참을성이 줄어서 좋은 이유

줄어든 내 미련한 참을성은 좀 더 나와 나를 가깝게 했다는 것

by 딛우

난 참을성이 꽤나 좋은 편이다.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속상한 일도 잘 참는다.

그렇게 참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다리며 견디는 버팀과 아무것도 없을 허망한 끝을 알고도 그저 참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모르던 때.


사람도, 상황도, 그저 참고 참아내면 지나가겠지.

유약한 나의 어리숙한 고달픔도 누군가는 알고 있겠지.

불편함을 금방 드러내는 건 실례인 거고. 타인에게 너그러울 줄 알아야 한다고.

뭐, 어릴 땐 그렇게 배웠던 것 같다.


나는 좀 더 이 부분을 무언가... '올바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임무처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참은 어린 내게도 언젠가 커다란 상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며.


그러나 돌이켜보면, 끝내 내게 다정할 일(상황이든 사람이든)은,

내게 굳이 무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굳이, 불편하게도 하지 않을 테고.

내가 굳이, 너그러워지자며 어린 마음에 거듭 다짐을 해야만 할 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목표점에 향하는 것에 있어 넘어야 할 퀘스트(시련)야 다른 글에서 쓴 것처럼 얼마든지 원하는 바가 있으니 감당할 테지만. 내가 가진 타고난 참을성은 결국 나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들에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어느 날의 나는 더 이상 참는 것에 미련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련하게 참지도, 미련하게 불편함을 감수하지도, 미련하게 너그럽지도 않게.


그저 추우면 옷을 한 겹 더 걸치는 것처럼.

불편한 상황이든 사람이든, 적당히 돌아서면 될 일이며

애써 더 좋은 사람인 양 너그러우려 노력하지도 않는 법을.

미련을 덜어내고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어설픈 미련은 어쩌면 나를 망가트리기밖에 더 할 게 없는지도 몰라서 조금 외로워진다 한들 나는 나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가끔 속을 알 수 없게도 굴고, 이래저래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이런 내 모습마저 멀찍이 짐작하고 그저 곁에 머물러 줄 몇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성을 좀 덜어내고 나니, 나를 들여다보고 또한 드러내는 것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폰 17.2.1 업데이트 후 일기 앱이 생겼다


블로그(또는 브런치)를 하는 것을 굳이 발설하지 않다가, 요즘엔 더러 먼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 이야기를 할수록, 진짜 나를 알고 봐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힘이 되는 일이라.


어쩌면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 블로그다. 많지도 않은 방문자 수, 조회 수, 댓글 수에 괜히 연연하기도 하고 굳이? 싶은 의무감도 은근히 생긴다. 그러나, 내 손끝으로 키보드를 누르며 이런저런 말들을 적는 것은 견디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털어내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내도 나쁘지 않다고 할만한 것들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한다.


기록을 한다는 건, 나를 탐구하는 일이고. 누군가의 기록을 본다는 건 그가 허락한 만큼의 마음을 열고 써 내려간 진심을 엿보며 나와 같은 결의 사람들을 향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다.

일상에 하나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다.




아무튼 별안간 적기 시작한 이 글의 결론은.

줄어든 내 미련한 참을성은 좀 더 나와 나를 가깝게 했다는 것.


블로그든 어디든 이런저런 내 머릿속 가지들을 잘라내며 적어 내려 가는 일은 내가 제법 삶을 씩씩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다면 참지 말고, 어디든 적어보길 바란다.

그게 누군가를 향한 욕이든, 일기든, 편지든 뭐든.

마냥 참으며 그 가슴에 혼자 다 안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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