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다
여름이다. 뜨거운 땡볕을 벗어나 그늘에서 산들바람을 마주한다. 하지만 시원함보다는 햇볕에 입김에 습함이 몸을 가린다. 아침잠을 쪼개어 러닝머신에서 흘리는 땀은 반겨하며 자연이 주는 것은 왜 이리 싫은 걸까. 참 모순적이다.
제철을 맞이한 열기에 목이 갈라진다. 갈증이 나며 시원한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해본다. 아메리카노 아니다 요즘 너무 많이 마셔 밤잠을 설치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원한 단 맛이 있는 과일은 어떨까 가련 수박이나 참외를 선택지로 집어 놓아본다. 하지만 이내 지워진다. 남겨져버릴 것 같다. 혼자 사는 이에게는 그것은 슬픈 것이다. 잊혀 버려질 것이 크고 외롭게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다는 건 고독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빨간 줄로 그어버린 것들 속에 살아남은 것은 팥빙수였다. 뚜벅뚜벅 발걸음 하나에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느껴진다. 촉촉이 아닌 축축함이 지속되는 것이 싫어 보폭이 빨라졌다. 이내 종착역 앞에서 서서 두꺼운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의 냉기가 머리 위를 휘날리며 계절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여러 개의 메뉴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있는 것들 속에 나는 하나만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들뜬 목소리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팥빙수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였다.
새하얗게 쌓인 꼭대기에는 팥 한 줌과 떡 하나가 왕관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숟가락으로 갈려진 눈발들의 흔적을 허물었다. 입안에 들어온 눈꽃들은 여기저기 휘날리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한 줌 한 줌 조심스레 파고 나니 옥상에 있던 팥앙금이 스며들었다. 숟가락 한 스푼에 얼음 움큼에 까만 고명을 얹어서 한입 먹는다. 달콤하다. 계절에 찝집함에 지쳐 쓰러졌었다. 벗어나지 못하는 번뇌의 흔적이 잠시나마 잊힌다.
웃을 일이 많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나는 일을 하여야 하고 누군가를 대해야 하는지 고민에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고 뜨거웠다. 답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엇나가고 길이 눈앞에서 끝나는 것 같았다. 단비가 그리웠다. 추적이는 저 비 사이로 식히고 싶었다. 근데 참 별거 아닌 이 팥빙수 하나로 상처받은 마음이 다독여진다. 울컥거리는 마음을 감추려 나는 숟가락질을 더 한다.
오늘은 왠지 이 가게를 나가면서 윤종신의 팥빙수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