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흐르는 시간만큼 고민거리들도 훌쩍 날아갔으면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돈다. 어느 순간 혼재된 고민의 흔적이 혼란스럽고 화와 슬픔만이 쌓인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난제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1의 가치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빛나지도 주목받지도 못하였다. 그냥 영화 속 수많은 인파 속 행인 55 정도로 치부하여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사회인으로 서의 삶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다.
졸업을 하였고 방황의 길에서 우연히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지금의 직장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주목받는 주인공을 꿈꾸지 않는다. 내게는 단독샷보다는 수많은 인파들이 잡히는 단체샷이 더 좋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주변을 신경 쓰고 보살피려 한다. 그것이 내게는 더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것을 오래 하다 보니 한층 한층 계단을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약간은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로 인해 나에게 상대적으로 아래 있는 이들에게 지시를 할 수도 있는 힘과 책임이 생겼다. 더불어 작고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배려와 보상을 할 수 있는 부분 또한 따라왔다.
업무의 성과에 따른 선물이 나보다 위에 있는 존재들로부터 떨어져서 그것을 받는다. 먹음직스러운 피자 한판의 보상에 때로는 허기짐에 남김없이 먹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채 절반을 먹지 못하고 남긴다. 남겨진 것들이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비축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의 가장 큰 고민이 생긴다. 내게 한판의 크기가 포만감을 주지만 대체로 0.6~0.7 만으로 만족이 된다.
그렇다면 식어버린 나머지 조각들이 나에게 가치 있는 것 일까? 그것이 내일에 양식으로 따끈 따끈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까? 나보다 더 허기지고 필요한 이들에게 그것이 돌아가야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내가 내린 임시 답변은 콩 한쪽의 나눔의 옛말을 따라 보 자라이다.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고 내일의 차가워진 피자 조각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며 더 큰 것을 바랄 것이다. 그로 인해 삶의 불행의 씨앗이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단체샷에 찍어진 동료들에게 나누려고 한다. 그 씨앗이 단번에 커다란 과실이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내게 언젠가는 돌아온다. 그것을 믿어보려 하고 같이 걸어 가려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행동을 멍청한 것이라고 들한다. 그리고 냉정해져야 한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혼자만의 사진 속에 빛남이 있을까 반문한다. 내 작은 씨앗들이 비롯 모두 개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어진 꽃향기는 아주 길고 은은하게 삶을 감싼다. 1의 온전함은 가지려 하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밞히고 짓눌려져도 내 의지를 지키려 부단히 버티고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