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
나는 특별하게 종교를 믿거나 미신 같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그래서 삶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나로 인해 도출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삶에서 B지역으로 발령받고 1년간은 소히 마가 끼었다는 말처럼 불행이 겹쳐서 연달아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 조금은 감정이 무뎌졌지만 그 당시 힘들어하던 나를 바라보던 어느 지인은 터가 좋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시작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처음이기는하나 또 어찌 보면 처음이 아닌 뭐라고 정의 내리기 애매한 출발이었다. 나름 2년간의 선행 학습과 또 고맙게도 이전 매장에 동료들의 도움으로 매니저라는 위치에서 업무를 예습을 하기도 하였다. 잘 적응할 수 있는 조건들은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삐걱거리고 있었고 한 타이밍 늦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여 보았다. 혹시 내가 기회를 잡았다는 안도감에 의연 중에 나도 인식하지 못한 나태함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30분 일찍 출근을 하기도 하고 일들을 더 하려고 나섰다. 이러한 행동들이 이전에 일했던 매장에서는 정체되어 있을 때 나름의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름의 길을 잡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헤매고 있었다.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하는 순간 나는 느꼈다. 여기 있는 매니저들은 내가 알고 있던 정의의 동료들과는 달랐다. 내게는 일을 하면서 나름의 철칙이 하나 있다. 절대 일하는 곳에서 이성적인 관계를 만들지 말자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생긴 시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B매장의 근무하는 매니저는 나를 포함해 3명 있었고 그 위에는 부점장이 1명 있었다.
나를 제외한 선임 매니저 2명은 입사시기가 비슷하였고 나이대도 차이가 없었다.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이었다. 내가 보았던 둘은 원칙적으로는 상하관계가 없지만 눈에 티가 날 정도로 위가 확실했다. 그 이유는 선임매니저 여성이 바로 부점장의 여자친구였고 당시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기에 항상 남성 매니저는 눈치를 보고 굽신거리면서 혼이 나는 일들이 많았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일의 큰 지장을 주는 실수도 아니었고 누구나 실수를 하는 순간이 있기에 적당한 선에서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점장은 항상 나를 포함한 매니저들 앞에서 훈계를 하며 핀잔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가 불편하고 안절부절못함에 빨리 끝이 나기를 바랐다. 난중에는 저 화살이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생겼다.
머피의 법칙처럼 걱정은 현실로 이어졌다. 적당한 유예시간을 넘겼다 판단한 둘은 남자 매니저에서 나를 향해 스코프를 조준하였다. 정말 터무니없는 것들을 책잡았다. 가령 예를 하나 들자면 중고책들을 매입하고 나서 일부는 포장을 한다. 훼손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부록이 있어 분실이 될 수 있는 것들과 만화책 같은 종류는 그런 작업을 한다. 그래서 주로 카운터에서는 손님이 없을 때는 포장을 하는 시간들이 많다.
책마다 크기가 차이가 있고 그것에 딱 맞는 규격의 포장지는 없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있는 크기에 포장지를 활용하여 작업을 한다. 책을 비닐 사이에 넣고 남는 공간은 접어서 테이프로 고정하여 최대한 깔끔하게 보일 수 있도록 정리하여 마무리한다. 근데 이 매장의 공포의 통치자의 부점장은 나에게 포장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나의 방식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말이다.
이전 매장에서 2년간 일하면서 나름 수많은 책들을 작업해 보았다. 불쾌한 기분이 들었고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시키는 방법대로 해보았다. 정말 큰 차이가 없었다. 근데 이 꼬투리를 한 달 넘게 잡고 핀잔을 주었다. 심지어 초시계를 가져다 옆에 재면서 시험관처럼 감시하였다. 어느 순간 불쾌함을 넘어 그가 말하는 효율의 가치는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동료의 자존감과 사기까지 떨어뜨리면서 강조하는 것일까 궁금하였다.
딱 3초 차이였다. 그 시간으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은 전혀 없다. 빠르게 작업이 끝나면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티끌이 모여 산이 되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백번 양보하여 이해 보려 하였다. 하지만 그 3초가 매장에 효율을 선사하지 않는다. 매장은 어찌 보면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벹트를 순환하는 구조이다. 각각의 시간마다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고 시간이 되면 교대하여 앞으로 나가는 구조이다. 그러기에 내가 작업이 마무리되었다고 무턱대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정말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많았다. 차후에 에피소드들에 이야기하겠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이렇게 특화된 재능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뭐 그 당시 어리고 순진해서 따지지 못했지만 지금 문제를 삼으면 사회적으로 물의가 되는 정도의 일들도 있었다. 집에서 쉬는 날 휴대폰 CCTV로 감시하거나 일부러 함정을 파놓고 미끼를 던져 실수를 유발하게 하거나 아 다시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점은 내게 화살이 돌려지니 그동안 괴롭힘을 받던 존재인 남자 매니저의 모습이었다. 처음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눈길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으로는 배신감이 들었었다. 왜 이전 매장의 부점장님이 나에게 그 자리가 좋지 못한 자리인지 기회면서 시련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해 준 게 납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곳을 퇴사하고 나는 마음먹었다. 내 인생에는 절대 사내연애는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