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일을 하면서 내게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다. 사실 그것들이 쉽사리 찾아오지도 않을뿐더러 나타나도 못알보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다반사이다.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기회라는 것을 나는 놓쳐버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손에 운 좋게 걸려들어 지어진 것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아마 내가 10년이라는 시간을 한 업종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A서점에서 이렇게 오래 할 것이라 생각은 못했다. 구체적인 플랜이 없었고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하루하루에 집중했다. 그것들이 쌓이다 보니 시간은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고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졌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생김에 따라 확실한 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직책이란 것이 주는 안정감은 확실히 다르다. 나는 스탭이며 조직의 구조의 말단이었다. 그러기에 언제든 변화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일을 하면서 더더욱 커졌다.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매장의 관리자의 정원은 정해져 있었고 확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기다리거나 떠나거나 둘 중의 갈림길에 섰다. 업무에서 내가 뚜렷이 한 부분을 맡고 해 나간다는 부분이 뿌듯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만약에 찾지 못한다면 남들보다 더 늦게 마주한다면 하는 걱정들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 나는 이 일을 붙잡고 싶었고 왠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동료들의 덕분도 있다. 그래서 나는 두 갈래의 선택지에서 기다림을 골랐다. 1년이 지났고 C군은 J매니저의 취업 중개인의 역할을 하며 떠났다. 그 뒤로 후임으로 온 스태프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나를 긍정적인 시선을 본 부점장님의 권유로 새로운 직책이 생겼다.
매니저와 스탭 사이의 중간적인 위치에서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이로 인해 월급도 조금은 올라가고 나에게 주어진 업무의 범위도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매니저들 중 누가 나가지 않는 이상 자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2년 차가 돼 가는 시점에서는 나의 조바심보다는 주변인들의 불안이 전해졌다. 언제까지 알바만 하고 살 수 있는 거냐고 직장을 안 구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매장에서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업무를 바라보지 않았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마냥 내가 회피하고 울타리 밖에 나가기 무서워서 숨는다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이 즐겁고 나는 잘할 수 있고 언젠가는 매니저라는 관리자의 직책을 가질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말이 맞고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딱 한 달만 더 나의 시간을 주고 운명에 맞게 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나가 자라 생각했다. 후회하기 싫었기에 더 열심히 더 나서서 일을 하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쿠키영상이 올라가기 직전 뜻하지 않는 기회가 내 앞에 나타났다. 타 지역에 매장이 새롭게 오픈이 되면서 정식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를 작성하였고 면접까지 준비하였다. 정말 잡고 싶은 기회였기에 열심히 준비하였다. 면접 상황을 본인들의 경험에 반추하여서 시물레이션도 해주는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좋은 결과를 나를 위해서도 내고 싶었지만 도와준 이들에게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서류는 근무한 경험이 가산점이 되어 통과되었다.
면접의 일정이 정해지고 장소는 본사가 있는 서울이었다. 만만의 준비를 하였고 결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지도를 검색하여 도착한 건물에 문을 열고 면접 장소에 들어갔다. 이미 몇 명의 면접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이 속에는 나와 비슷한 타매장의 스태프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면접의 방식은 팀별로 진행되었고 5명 정도가 묶여서 진행되었다.
앞에 팀들이 하나둘 진행이 되고 내게 속한 팀의 차례가 들어왔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는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았다. 하나 둘 질문이 던져지면서 머리가 갑자기 하얘지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백지상태가 되었다. 아 나는 이번에도 내손으로 이렇게 기회를 놓치는 건가 후회를 할 때 반전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스태프로 근무하고 있는 상황을 알기에 매장에 대한 업무에 대한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그동안 내가 했던 배운 업무의 숙지능력과 그 속에서 강점을 보이는 부분들 그리고 수많은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그들로 받은 회사에 바라는 니즈에 대해 정리하여 이야기하였다. 왠지 그 당시 내게는 답을 모르는 문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알만한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자신감 있게 표현한 부분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리고 업무에 대한 파악도가 높다라고 판단을 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후 다수의 질문들이 내게 돌아왔고 꽤나 수려하게 답변을 하였다. 1시간 같았던 2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기회를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기다림은 길게 늘어지지 않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합격이었고 나는 기어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결과를 알려주고 나를 도와준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결과가 통보되고 약 한 달간의 시간이 있었다. 타자방으로 가야 하기에 집도 알아봐야 했고 일정도 조율해야 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나의 처음을 시작한 공간과 동료들과 이별을 하여야 했다. 정말 의도치 않게 시작한 곳이었지만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여러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잊히지 않을 것 같고 눈물이 났다. 같은 회사 지만 다른 매장으로 가는 것이 이별 같았다.
아직도 항상 고마움이 가득한 나의 첫 상사들은 고맙게도 내게 기회를 잘 잡은 거고 나의 건승을 응원하였다. 그렇게 나는 A매장을 떠나 타 지역 B매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이것이 내게는 참 큰 굴곡점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참 눈물과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곳이 되기도 하였다. 다음 에피소드들부터 B매장에서 이야기를 쓰게 될 텐데 참 다이다믹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