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군 Feb 02. 2024

고객

이상한 놈

 모든 직업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오랜 시간 종사한 서비스 업종의 가장 큰 고충은 단연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응대를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상황들이 작업자를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속 수천 명의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잊히지 않는 순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화 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작품이 있다. 고객들을 놈이라고 칭하는 게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내게 이와 같은 범주로 나뉜다. 중고서점에서 일을 하게 되며 가장 많은 작업 시간을 할애하는 곳은 바로 카운터이다. 계산을 하고 책을  매입하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말들을 하게 된다. 그래서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녹초가 되어 묵언 수행하는 스님과 같이 되기도 한다.



 카운터는 고객들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길기에 업무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처음 입사하게 되면  이 부분에 엄청 엄격하고 확실하게 교육을 받게 된다. 정해진 매뉴얼에는 필수 안내 문장과 조심해야 하는 단어와 행동들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이를  충분히 숙지하고 수 차례 상황극까지 마치고 나서야 겨우 카운터로 투입된다. 그마저도 단독이 아닌 사수와 함께 해야지 가능하다.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거나 어중간한 단어 하나가 고객들의 입장에서 혼선과 불편을 주기에 응대는 간단명료하여야 한다. 그래서 교육 간 고객과 긴 시간을 카운터에서 마주 보며 응대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정해진 틀을 벗어나게 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안내하는 작업자도 혼란이 생기고 실수를 하게 된다.


 보통의 고객들은 정해진 매뉴얼들을 따르면 크게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부의 고객들은 범주를 벗어난 상황을 유발하게 만든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한 가지의 공통점들이 있다. 본인들이 특별하게 취급받기를 바라며  그래서 더 나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들에게 매뉴얼대로 가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경우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고객들을 마주하면 정말 멘털이 붕괴된다. 매뉴얼에는 없는 상황이고 그들은 또 쉴틈을 주지 않고 작업자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일부는 이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변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그녀는 앞서 고객의 범주 중 이상한 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입사를 한 지 3개월 차가 지나 매뉴얼에 대한 숙지도 매장이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서도 파악이 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카운터로 들어가 작업자 교대를 하고 인수인계사항을 듣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 매장 내는 평일이라 많은 고객들이 있지는 않았다. 고요한 분위기에 괜스레 뭔가 약간 긴장감이 풀렸었다. 근데 적막을 깨고 한 여성 고객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매입하고자 하였고  나는 안내 문구를 성실하게 전달 후 상태 판정을 하였다. 그런데 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겼다. 중고서점에서는 민감하게 여기는 사항이 있다. 너무나 새책 같은 도서들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는다. 아무래도 책을 가져와 판매를 통해 현금으로 받아가다 보니 아주 소수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새책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도서를 훔쳐서 매입을 시도한다. 이런 문제들로 법적인 문제가 야기되어 중고서점 작업자에게도 책임이 전가되었다. 실제로 도난당한 매장에서 중고서점을 고소하여  충분히 확인 절차를 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직원이 벌금형을 받은 일도 있다. 그래서 매입을 하러 온 책들 중 3분의 2가 펼쳐본 흔적이 없다면 구매한 소명을 요청을 한다.


 바로 이 범주에 그녀가 해당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상태 판정을 멈추고 해당사항을 기분이 나쁘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내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해를 하지 못하였고  이것은 내가 산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 과정에서 뭔가 어눌한 말투가 느껴졌고 왠지 몸이 불편하신 분 같음을 이제야 느꼈다. 가끔 보기 드물게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의미에서 보호자 분들 없이 홀로 매장을 방문하여 계산 및 매입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왠지 이 고객님도 그런 것 같았다. 충분히 쉬운 표현으로 돌려 안내를 하였지만 그녀에게는 작업이 멈춰진 상황이 거슬리게만 느껴진 것 같다. 그녀는 갑자기 고성을 지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매우 당황스러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식은땀이 흘렀다. 때마침 부점장님이 그 상황을 목격하고 정리를 해주었다. 알고 보니 매장을 가끔 방문하는 고객인데 위층 병원에 언니와 들렀다가 매입 심부름을 하러 온다고 하였다.   


 처음 부점장님도 마주했을 때  나처럼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언니분이 오셔서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하고 있는 고객이었다고 내게도 숙지하기를 권했다. 일순간 긴장이 풀리다 보니 다리에 힘이 빠지며 몸이 늘어졌다. 내게 잠시 사무실에 쉬었다고 나오라고 부점장님이 이야기하며 본인이 카운터를 봐주었다. 따뜻한 물 한잔을 먹으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카운터에 가서 근무를 서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제의 고객이 다시 매장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심박수가 막 뜨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하얘졌다. 근데 대뜸 내게 봉지를 내밀며 자신은 이런 게 먹으면 안 되는데 샀는데 이거 어쩔 수없어 들고 왔다며 횡설 수설을 하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2차 멘붕이 오려할 때 마늘빵을 먹으라고 내밀며 주었다.


 말문이 턱 멈췄고 이 이상한 상황은 무엇이지 하며 정신을 부여잡으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고객에게 고맙지만  회사 내규상 고객한테 이런 것을 받으면 안 된다고 하며 다시 돌려주었다. 하지만 이거 안 받으면 버려야 한다며 기어코 주겠다는 강렬한 의사 표시를 하였다. 왠지  다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결국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받았다. 그때는 당황스러움에 매몰되어 다른 생각을 못하였지만 돌이켜보면  왠지 그 마늘빵도 그녀만의 대화의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몇 차례 그녀를 응대하였지만 처음처럼 당황스러운 상황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 순간이기도 하였지만 또 고객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받은 참 이상하고 오묘한 기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매장에서 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그 고객은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럼에도 가끔은 문득 그녀의 생각이 났고 궁금하였다. 왠지 당황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지는 순간은 여전히 부끄럽다. 그래도 다시 그녀를 마주한다면 조금 더 친숙하게 응대할 잘 자신이 있을 것 같다.

이전 08화 오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