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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Feb 23. 2024

이사

이별

 처음이었다. 나의 시작의 공간인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간다는 것이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그려본 적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생각을 해보았다. 어릴 적은 마냥 독립된 공간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설레었었는데 막상 이사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는 약간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였다. 익숙하게 가족의 보호된 삶이 이젠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주일을 조금 넘는 정도의 제한을 회사는 내게 통보하였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지낼 공간을 찾아야 하는 것이 시급한 우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의 타향살이의 지역은 고향과 멀지 않은 도시였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지인들이 이미 살고 있었기에 도움을 주었다.



 아는 형님과 부동산을 찾아갔다. 여러 동네들을 고려하여 알아보았지만 나의 선택은 이 도시의 지역명을 가진 대학교 앞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나름 그래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방문했던 공간이기에 이러한 결정을 했다. 사실 이 대학에 다니었던 여성을 만난 적이 있기에 추억이 왠지 이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5~6곳을 지인과 같이 돌아다니며 살펴보았다. 그중 적절한 가격과 위치의 원룸을 하나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사 일정을 전달하였다.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를 넘겼으니 다음의 준비를 하여야 하였다. 나의 동료들과 작별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고 여러 수식어를 붙여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내 삶의 귀인들이었다. 그래서 끝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안녕을 웃으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보다 동료들이 먼저 움직였다.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캐주얼한 니트를 선물해 주었다.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부점장님은 추가로 내가 가는 지역의 매장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야 할 상황이 있었다. 그것에  너무나 동료로서 나를 높이 평가해 주고 아껴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근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일을 하는 것에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크게 다른 업무도 없고 나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상황들도 겪어보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부분은 예외였다. 너무나 운 좋게도 처음 시작은 내가 잘 적응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었다. 좋은 동료들과 그리 바쁘게 돌아가지 않는 매장의 속도에 배우고 익히는 것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발령받게 된 매장은 전국에서 매출이 탑 5안에 들 정도로 바쁜 곳이었다. 그 흐름을 잘 읽고 이질적이지 않게 녹아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부점장님 말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고민을 가중시켰다. 그곳의 관리자들은 이곳과 사뭇 다르고 지금 가는 자리가 변동이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잘 버틴다면 엄청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적을 알면 지피지기라는 마음을 가지고 내게 남은 시간이 반쯤 남았을 때 일할 매장에 찾아가 보았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직원들과 수많은 대기 인원들이 카운터에서 줄을 서있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내가 알고  일했던 공간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말이다. 쭈뼛쭈뼛 겨우 그곳 매니저들과 부점장에게 인사를 드리고 준비한 음료 세트상자를 건네었다. 사무실에서 앞으로 잘 부탁드리며 열심히 해보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드러내었다.


 그때까지는 나의 자신감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파도는 거칠었고 이곳은 삭막하다 못해  메말라진 공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은 타임라인 중 하나이며 혹여나 되돌려진다면 바보같이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만이 남아있다. 아무튼 매장 방문 이후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빨리 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사 날짜가 다가왔고 설렘 반과 걱정 반으로 캐리어를 가득 채워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공간을 떠났다. 부모님이 근심의 얼굴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잘해보겠다고 웃으며 집을 나왔다. 고맙게도 지인이 차를 가지고 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줘 생각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공백이 많은 공간에서 덩그러니 옷가지 몇 개와 침구들을 배치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괜스레 그리움과 조용한 방안이 슬프게 마음을 울린다. 생각이 많음이 밤을 지새우는 것 같아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고 적당한 온기를 가진 물을 라면에 부어주었다. 소주잔이 미처 없어 그냥 컵에 조금 술을 따랐다. 왜 이리 유달리 오늘따라 쓴 건지 하며 컵라면에 국물로 희석시켰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이전 울타리와 이별이 아직 미처 깔끔하지 않은 것 같다. 기회가 때로는 행복만을 주는 것은 아니고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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