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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Mar 15. 2024

도범

1부

 B매장에서 그리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드물다지만 그래도 몇 가지 임팩트가 있었던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오늘 꺼내어 보려 한다. 짜장면이 유독 맛있게 보이는 공간들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당구장이다. 잠깐의 짬에 먹는 짜장면이 왜 그리 맛스러워 보이는지 필수로 주문하게 된다. 아쉽게도 당구를 잘 치지 못해 즐길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경험해 보았다. 정말 묘하게 다른 공간이랑 달리 맛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 곳은 예전 영화 속에서 보고 당구장만큼 짜장면의 때깔이 좋아지는 곳이 존재하는구나라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곳은 바로 경찰서이다. 사실상 사고를 치거나 직업을 경찰로 선택하지 않는 이상 내 인생에서 겪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럼에도 왠지 이룰 수 없는 꿈이 더 달콤해 보이듯 괜스레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두 가지 전제조건을 벗어난 상황에서 나는 상상을 현실로 실현시켰다.



 중고매장에는 생각보다 도범이 꽤나 있다. 일주일 간격으로 전체 도서를 각자의 파트별로 재고조사 작업을 진행하는데 한 달간 분실도서의 양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사실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큰 리스크이다. 이에 직원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재고 관리에 대해 더 신경 쓰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왠지 자신이 맡은 파트에서 분실이 많아진다면 괜히 내 탓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경을 쓰는 만큼 도범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다. 스트레스만이 커지고 괜히 다른 업무에 지장이 가는 경우들이 빈번하다.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달리 이러한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었다.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경험이 있는 선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공통적으로 대부분은 본인의 파악보다는 고객의 제보를 통해 도범을 검거하였다.


 나에게도 그런 귀인이 언제 나타나겠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푸념을 내뱉어보았다. 근데 언제나 사고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여느 날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없는 날이었다. 판매가 되어 비어진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매입된 책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탭이 나에게 다가와 어느 고객이 수상하게 눈치를 보며 책을 가방에 넣는 사람을 보았다고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어보았다.



 일단 매뉴얼대로 수상한 행동을 하는 고객 근처에 배치하여 관찰하게 하였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CCTV로 동선과 행동을 확인하였다. 시간을 돌려 점검해 보니 정말 가방에 책을 넣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당장 다가가 고객을 추궁할 수는 없다. 가방에 넣고 계산을 할 수도 있으니 매장 문을 나가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하였다.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그냥 우려가 오버로 끝나며 계산을 하고 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고객은 매장을 그냥 나가버렸다. 바로 따라가 고객을 붙잡아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상황을 목격하였고 이에 대한 행동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전 도범 검거 시 공유된 인근 경찰서 도난사건 담당자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였다.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 두 분이 매장 사무실로 찾아왔다.


 CCTV의 도난 장면과 지켜본 직원이 상황을 경찰에게 전달하였다. 형사분 중 선임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객에게 추궁을 하였다. 어떤 것을 훔쳤는지 가방에서 꺼내 확인을 하였다. 두 권의 책이었다. 근데 그것이 BL이라는 장르의 성인 만화책이라는 것에 놀라웠다. Boys Love라는 약자로 남자 동성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BL이다. 형사 분들이 도서를 확인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괜스레 내가 더 민망하였다.


  중고도서들의 가격은 보유 재고량과 판매량을 고려하여 측정이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만화책들은 판매가격이 싼 편이다. 기껏 해야 두 권의 책은 삼천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경찰들도 이러한 가격적인 부분에서 의아했고 고객에게 상황을 추궁을 하였다. 하지만 묵묵부답으로 땀만 삐질 삐질 흘리고 있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그 답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 큰돈이 아니었고 도난 수량도 아니었기에 죄송하다는 말과 계산을 하면 끝이 난다. 하지만 끝까지 시선을 회피하면였다. 결국 경찰 분들도  매뉴얼은 존재하였고 나 또한 정해진 상황에 따른 내규가 있기에 따라 하였다. 고객은 형사 분들과 동행하여 매장을 떠났다. 이후 경찰서에 가서 진술한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 고객이 말하기를 그런 장르를 구매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있었고 왠지 직원들도 무관심해 보여서 들고나가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한다.



 상황은 이후 다시 매장을 방문하여 결제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마음은 씁쓸하였다. 도범을 잡은 것을 기대하고 꿈꿔왔지만 편치 않았다. 그리고 직원들이 무관심해 보였다는 말이 화가 났다. 누구보다 신경을 쓴 이들인데 도범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사실 처음에는 상황을 왜 이리 어렵게 만들었는지 안타까운 연민이 들었지만 지금은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에 납득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불쾌한 경험은 이후 겪게 되는 나의 충격에는 새발의 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는 의도치 않게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웃픈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묘한 감정이 든다. 그 사건은 그리 굴곡지지 않는 내 인생에서 정말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것은 다음 편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남기자면 영화 속 CSI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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