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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Mar 28. 2024

추락의 해부- 2부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


 영화는 법정 장르적인 특성상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의 담화의 형태의 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중 인물들은 시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추락에 대한 진실을 정의하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변질되어 간다. 질문을 하는 자들은  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나쁜 지만에 집중하고 답하는 자는 타락의 정당성을 변명한다. 이들에게 진실은 더 이상 증명이 주제가 아닌 것이다. 왜곡된 파편으로 추론되는 추락의 해부는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진다.


 이야기에서 본질적인 부분에서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의 구분을 하자면 전자는 다니엘이며 후자는 산드라이다. 먼저 답하는 자에 대해 지켜보았다. 그녀의 말은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은 산드라를 가리키고 그녀의 논증에는 빈틈이 있다. 우리는 관찰자로서 산드라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이 온다. 분명 변질된 질문을 던지는 법정의 해부학자들은 행태의 논리의 비약은 가혹하게 느껴진다.



 프레임에 가두어 답을 유도를 한다. 그것이 노골적이고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우리는 정서적으로 진실의 무게추가 산드라에게 더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법정에서 내뱉어지는 그녀의 변명은 완전한 진실도 거짓도 아니다. 교묘하게 그 선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감성을 이성으로 변모시킨다.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정말 그녀는 이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분명 산드라의 말에는 진실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공감이 든다. 법정에서 재단하는 자들의 질문에는 파편적인 소리만이 있다. 그것은 완전한 불안정한 문장이다. 단어들의 나열 속에서 포함된 마침표 쉼표 느낌표등은 생략해 버리고 무시한다. 하지만 산드라는 문장 전체를 말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것이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그 문장의 진실성에 이 추락의 해부에 또 다른 피해자로서 연민의 시선을 생기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의 물음표는 왜 그녀의 말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이지 못하고 믿음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부분은 문장이  완성되어 파편적인 단어의 나열이 아니지만 그 속재료 들은 진실이 아닌 것들이 희석되어 있다. 교묘히 포장되어서 관찰자인 우리를 현혹시킨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자로서 지켜본 산드라는  수차례 거짓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들켜진다. 하지만 그것들이 진실의 입증에서 최종판단을 짓지는 못한다.



  산드라의 선택 순간에는 믿음의 강렬함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성향 안 사무엘의 매력에 이끌려서 결혼을 하였다. 그것이 주는 영감과 자신에게 성취를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하지만 아들의 사고라는 변수가 생긴다. 그것은 산드라에게 선택의 기로인 것이다. 그녀는 이미 일어난 불행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눈물에 정체해서는 다음 정거장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삶을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산드라의 파트너인 사무엘은 다르다. 자신이 제때 아이를 픽업하지 못하여 일어난 사고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한없이 좌절의 굴레에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감정적을 조절하기 위해 약을 복용한다. 그는 한없이 과거로 가고 싶어 한다. 자신의 꿈인 작가도 하고 아들에 대한 죄책감도 덜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고향인 프랑스의 그래 노블로 이사를 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버스는 하나이다. 앞으로 가려는 것과 뒤로 가려는 것들 사이에서는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사무엘은 더더욱이 자기 연민에 빠진다. 자신이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없는 것도 성공한 산드라가 방해물이다. 그녀는 내 것을 훔쳐갔고 나에게 기회를 박탈시킨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자신은 한없이 불쌍한 존재로 보이게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정작 그의 글은 지인에게도 외면받는다. 그것들을 이용하여 소설을 만들어내고 인기를 얻어가는 산드라가 더더욱이 미워지고 싫어진다.



 그러한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극 초반 조에와의 인터뷰 간 음악을 강하게 튼 것을 잘 느껴진다. 산드라는 더 이상 사무엘이 자신에게 영감과 동행의 파트너로서의 매력이 떨어졌을 것이라 보였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 없이 그를 배제시킨다. 그녀의 외도도 표절도 그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산드라의 선택에 단호한 믿음은 어찌 보면 이 추락에 대한 원죄에서 그녀를 자유롭지 못하다.


  산드라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행해지면서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은 그녀 자신에게서 중요치 않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려는 자신을 막고 있는 것들을 차례차례 피하기도 깨부수기도 한다. 선택에 대한 믿음의 강렬함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도 산드라에게도 안갯속에서 보이는 한줄기 빛 같아 보인다.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진실은 그렇게 선택하고 믿고 생각하면 만들어지기도 한다.


  질문하는 자인 다니엘의 시선을 영화를 바라보면 쓸쓸하고 시리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대에 놓인다. 그는 온전히 이 추락의 해부에 대해서 진실을 쫓아가려 하는 자라고 생각이 든다. 사무엘의 죽음 이후 산드라에게 자신은 이 추락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에 그녀는 아들의 말에 우리는 슬픔에 머물려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위로한다.



  다니엘은 사무엘과 유사한 부분이 이야기의 초반에서 느껴진다. 상황에 대한 감정적이고 지나간 것들에 대해 매듭을 지으려 한다. 그것들이 이루어져야 적어도 앞으로 조금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추락의 과정을 가혹하지만  온전히 바라보려 한다. 보지 못한다는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법정에 사람들과는 달리 이 사건을 이해하려 한다. 그것은 파편들을 통해 재단하고 추론으로 맞추어지는 답이 아니었다.


 다니엘은 영화 속에서 마지막까지 질문을 한다. 왜 이 추락이 이루어진 것일까 말이다. 그가 지켜본 해부의 과정에서 사무엘의 죽음이 어떻게가 이루어진 것일까 가 아니었다. 무엇이 이 사건이 가족의 추락과 상처로 얼룩지게 만들었는 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그 나름대로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답을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산드라의 선택과 같아 보인다. 믿음의 확고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산드라를 안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장면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그는 어찌 보면 이상과 현실 사무엘과 산드라 사이의 존재이다. 추락의 해부 과정에서 다니엘은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자의가 아니게 겪는다. 법정에서 가족의 치부가 들이미어지며 가십거리가 될 때도 회피하지 않고 들으려 한다. 그러기에 산드라를 미워하기도 하며 이해하기도 한다. 너무나 이르게 타인의 대한 선택을 해야 함에 그것이 안쓰럽게 보였다. 하지만 온전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울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성장의 힘을 느꼈다. 결국 질문하는 자는 답을 한다. 산드라와 다니엘을 바라보며 영화를 이해하려 한다면 꽤나 다채로운 해석이 된다. 이런 매력이 있기에 키워드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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