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을 주었다.

대구 꽃백화점

by 김군

꽃을 받아본 적 기억이 많지 않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아닌 다른 내 기억 속의 창고를 뒤적거려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삶에서 사랑받고 축복받았던 순간이 흔치 않아서겠지라는 답이 무심히 나왔다. 과거의 서랍장이 씁쓸하고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주었던 기억은 꽤나 뚜렷하게 있다. 물론 그것들 중 내게 일부는 좋지 않은 기억들도 섞여 있다.


거슬러 거슬러 나의 처음을 꺼내어보았다. 아마 그것은 20년 전 남짓일 것이다.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난생처음 고백이란 것을 하기 위해 서툴게 망설였었던 날이었다. 열렬한 나의 두근거림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주머니는 허전하였다. 한송이 겨우 들고 무작정 6시간을 미련하게 그녀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시작은 창대하지 못했고 쓰라림만 남겼었다. 그 뒤 나는 습관적으로 이성과 만남의 문턱 앞에서 장미 한 송이를 주면서 마음 표현을 하였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주머니의 여유가 생겼을 때도 그랬다. 뭔가 이루지 못한 꿈의 미련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꽃과의 기억도 거리가 조금은 멀어졌다. 그것은 2년 전에 시간에서 멈춰져 있었다. 그동안 재깍재깍 돌아가는 시계추에서 마음도 삶도 무미건조하게 되어버렸다. 꽃이라는 추억의 단어를 나 스스로 꺼내 볼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꽃을 사러 가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인스타그램의 스크롤을 내리다 꽃시장에 대한 피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런 곳을 평생 갈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과 꽃 참 이쁘다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근데 비슷한 피드들이 몇 개 보이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가보 자라는 충동적인 결단은 망설임이라는 중간단계를 패스하고 바로 실행으로 넘어갔다.


가장 근처의 꽃시장을 검색하였다. 대구 꽃 백화점이었다.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정도가 걸리고 지하철을 타게 된다면 2코스 정도였다.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과의 부대낌보다는 혼자서 걷는 것이 좋아 보였다.


에어 팟을 귓가에 꽂고 멜론 리스트에 있는 곡을 재생하였다.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 흘러나왔다. 멜로디가 참 좋고 가사도 좋다 역시 옛것이 좋다는 꼰대 같은 생각이 스쳐가면서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았지' 가사를 입으로 따라 불렀다.

음악에 집중하여 듣다 보니 생각보다 거리의 실제 감은 흐릿해졌다. 그렇게 목적지인 대구 꽃 백화점에 도착하였다. 입구부터 작은 화분들이 나를 맞이하였다. 그러면서 문득 아 현금이 필요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휴대폰만 덩그런히 주머니 속에 있었다. 삼성 페이를 활용하면서 지갑은 방구석 어딘가에 정처 없이 돌고 있었다.

일단 결제는 들어가서 고민해보자 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형형색색의 꽃들이 향이 코끝을 찔렀다. 기분이 좋다. 점심이 지난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꽤나 보였다. 나도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구경을 하였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내 선택은 튤립이었다.

왠지 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튤립과 마주하는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란색과 보라색의 꽃을 달라고 했다. 결제는 카드가 되었으나 부가세 때문에 현금보다는 10%로 더 받았다. 세단의 꽃을 가슴에 안고 가니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다이소에서 화분을 샀다. 가슴과 손에 든 화분의 무게의 거슬림이 적당하게 기분 좋음을 뭉게 갈 때쯤 도착했다. 문을 열고 손에 있는 화분과 꽃들을 화장실 세면대에 잠시 두고 배웅인사를 하는 봄이의 간식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튤립 손질을 찾아보았다.

어렵지 않았다.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화장실로 향했다. 결과물은 생각보다 썩 나쁘지 않다. 나의 공간에 놓을 일부를 빼고 나머지는 회사로 들고 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역시나 나는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설레 하고 좋아하는 얼굴들을 마주하는것이 아름답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이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이란다. 나에게 고백을 해본다. 그동안 너를 너무 짐스러워했던것 같아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 네가 좋아 우리 올해는 잘 지내자 회아팅.

* 대구 꽃 백화점

*주소: 대구 북구 칠성남로 164

* 튤립 한단 현금가 8000원 카드결제시 10% 부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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