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하루를 마주한다. 사실 일정이 빼곡하게 차져 있을 시간표에 하나가 빠져 버리니 허전하다. 침대 위에서 비어져 버린 공백에 시무룩 널브러져 있는 나를 탐탐치 못하게 지켜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귀여움으로 무장해 내 배위를 점령한 반려묘 봄이가 그 주인공이다.
아마 이 녀석은 간식 때문에 무기력한 내가 싫었겠지. 나는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일어나 봄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헬스장으로 갈 채비를 했다. 사실 운동을 꽤나 꾸준히 오래 했다. 다들 내가 운동을 한 기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신반의 얼굴을 하며 피식 웃는다. 물론 내 몸이 그에 적당하게 멋진 작품이 아니란 부분 때문일 것이라 이해한다.
내가 운동을 한 것은 몸을 가꾸기보다는 살기 위해서였다. 일을 하기 위해 하루를 버티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의무적으로 거의 매일 헬스장으로 나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반바지에 동내 마실 나가는 복장으로 집 밖을 나섰다. 요즘은 참 마스크를 마음 넣고 벗을 공간은 집 안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장에서도 사우나에서도 마스크를 하고 있는 이들을 처음에는 마주했을 때는 이질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슬리지 않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었다. 뜨거운 열기에 땀이 나는 것에 멍해지는 것이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주어 좋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전 그것을 즐긴다. 땀에 송글 송글 이마에 맺어질 때 나와서 물로 씻고 나왔다. 운동복을 입고 나온 발길은 헬스장 속 자전거를 타러 간다.
나는 이 기구가 좋다. 왜냐하면 멀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달을 밞으며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운동하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켰다. 요리와 맛집의 관심사를 알고리즘으로 노출시켜주는 이 친절함에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그중 한 영상 속에 음식이 끌렸다. 불고기 칼국수 처음 들어본 메뉴에 호기심에 바로 가게를 검색했다.
오늘 나의 공백을 채워줄 곳은 여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와 지하도로 가다 문득 거울이 비친 모습이 부끄러웠다. 반바지 차림에 드라이가 미처 안돼 부스스한 머리가 썩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마스크로 가렸으니 다행히였지 참 못 볼 꼴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세정거장을 지나치고 나서 내렸다. 휴대폰으로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하고 걸었다. 출구와 그리 멀지 않기도 했고 확실히 큰 건물이 있었기에 목적지를 찾는데 어렵지않앟다. 가게 문을 열고나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쳤음에도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
평소 작은 성량에 소리가 잘 들릴 것 같지 않아 마스크를 살짝 들어 불고기 칼국수 하나 부탁드려요 하고 내뱉었다. 기대감이 일으킨 허기짐이 밀려올 때쯤 머리가 희끗하신 사장님이 보리밥 비빔밥 한 공기를 내어주었다. 무채와 김가루에 보리 밥한 덩이가 참 복스럽게 눈길을 사로잡았다. 빨간 고추장을 살짝 들에 휙휙 저어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반복을 했다. 입안에서의 음식들이 아는 맛이지만 반갑고 정겨운 느낌이다.
비어진 그릇 속에 반사된 얼굴이 보인다. 흐뭇해 보였다. 단순하지만 공복의 식사만큼 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물 한잔으로 비어져버린 밥들의 아쉬움을 들이키며 덩그런히 주방을 쳐다보았다. 설렘과 기대감이 입맛을 다시게 했다. 나의 시선이 느껴진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뒤 기다림의 실체인 불고기 칼국수가 나왔다.
면 위로 깻잎들이 잘게 잘려있고 한가운데 불고기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젓가락으로 불고기한점을 집어먹었다. 맛있다. 다시 수저를 들어 아래 면들을 건져내었다. 다시 먹어도 맛있다. 뜨끈한 국물 사이로 매콤한이 느껴진다. 단짠의 조화와 살포시 느껴지는 매운 맛이 참 재미나다.
젖가락을 들어 먹방을 하는 사람들처럼 면치기를 해본다. 탱글 탱글 면발이 후르륵 입으로 들어갈 때 이게 되네 하는 쾌감이 들었다. 오물 오물 씹는 소리 외에는 정적이 반복되며 포만감이 찾아올때 쯤은 그릇이 깨끗이 비어져있었다.
사장님께서 살포시 다가와 모자란것은 없으셨나 맛은 괜찮으셨나 말을 건네주었다. 수줍음이 없었다면 최고에요 엄지척을 하고싶었지만 나는 맛있었습니다 고개를 살포시 내리며 인사를 하였다. 계산을 하고 문밖을 나오며 뿌뜻함이 느껴졌다. 오늘도 하루의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 미소가 돌았다.
가끔 의도치 않은 순간들 속에 힘들어졌던 적이 많았다. 유연하지 못하고 결단력이 부족했기에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삶속에 자의 보다는 타의에 좌지우지되는 경우를 자주 마주하다 보니 조금은 바뀌었다.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순간을 즐기고 또 다른 자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하루 비어져버린 시간 속에 어떤 것을 채워야 할지 고민의 순간 나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로 인해 작은 미소와 포만감을 얻었다. 나의 텃밭에 자의라는 씨앗이 뿌려져 새파란 새싹 하나가 나왔다.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순간을 오늘도 이렇게 글로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