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오는 계절 속에 흐느끼다

취생몽사를 마시며

by 김군

시간의 되새김질 속에 내뱉어진 계절의 반복이 찾아왔다. 매번 마주하는 것이지만 나의 반응은 여전히 반박자 느리다. 이곳에 터를 잡고 쉽지는 않겠지만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의 열기는 시간이 지나도 아직까지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마에 송글 송글 맺혀버린 땀방울에 나는 옷장 구석 잊힌 존재들을 뒤적거린다.



나프탈렌 냄새가 배어져서 코끝을 찌른다. 바람에 날려버리려고 창문을 열어본다. 우리 집 장꾸 봄이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달려와 자리를 잡는다. 이왕 준비한 거 에어컨도 작동 테스트를 한다. 냉기를 뿜기에 예열되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 집은 사람을 닮아가는지 느릿느릿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다. 사무적인 관계가 아닌 술주정을 받아줄 수 있는 인간적인 인류애가 있는 존재와의 만남이다. 독대를 할 당사자는 이전 부산 매장에서 일을 할 때 함께 일한 스탭이었다. 부산은 내게는 같은 타지였지만 유독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귀고 눈물도 흘리고 사랑도 하고 웃기도 했다.


오늘은 왠지 꽤나 긴 시간을 과거 추억팔이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얼추 약속 한 때가 되어 연락을 해보았다. 방황하지 않고 잘 오고 있는 건지 확인을 해본다. 역시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은 미아를 찾기 위해 하차할 역 개찰구로 향했다.


멀리서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동공이 좌우로 움직이는 친구가 눈에 보였다. 시야에 내가 들어오자 그제사 안도감이 드는지 손을 연신 흔들어되며 웃는다. 나도 함께 인사를 받아주었다.



가깝지만은 않은 부산에서 온 것이 괜스레 고마웠다. 그래서 맛난 것을 먹이고 돌려보내야겠다 생각했다. 그간 공허한 하루를 버티기에 돌아다닌 경험치가 발휘되어야 할 때다. 머리를 굴려 선택한 곳은 집 근처에 위치한 한우집이다. 꽤나 맛있고 가격대도 합리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된장찌개 볶음밥이 일품이다.


연신 대구의 더위에 놀란 이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약 10분 정도 걸어 우리는 고깃집에 들어갔다. 예전에 먹었던 부위 중 안심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고기를 시키고 카스 한 병을 시켰다. 맥주잔에 하얀 기포가 서서히 차임을 보고 있자니 침이 절로 삼켜졌다.


잔을 들고 시원하게 들이켠다. 살얼음이 살짝 띄워진 맥주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시간에 채우려 아등바등 되었던 고생이 5천 원에 병맥주 하나에 해결된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이 손질되어서 접시에 담겨 나오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가위를 잡았다. 고깃집을 가도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눈치를 보며 가위와 집게를 들고 구워야 하는 자리에서도 일관된 행동을 하였다. 나의 지론은 잘하지 못하는 것에 괜히 호기롭게 나서서 망친다면 그거야 말로 민폐이기에 나서지 말자이다.


어릴 적 몇 번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있으나 답답해하는. 주변 반응과 설익은 고기를 먹고 탈이 나는 친구들을 보고 재능이 없구나 확신하였다. 이후 철저히 외면하면서 굽는 것에 필요한 연장이 나의 손에 잡히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꼴로 보기 드문 진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스스로 도구를 집어 들었다. 평소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온전히 손님으로서 맞이한다. 곧잘 잘 익은 고기들을 접시에 얹어 주면 먹어라 하였다. 맛있어하는 반응을 보니 좋았다. 다시 비어져버린 맥주잔을 채우며 겹쳐지지 않은 시간의 근황을 물었다.


그동안의 쌓인 보따리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상처가 깊어 보였다. 꽤나 오랫동안 만났던 연인과도 이별을 하고 무미건조한 일에 지쳐 쓰러져있었다. 말끝에 모든 것이 자기 탓이다라고 내뱉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기 한점 을 주며 말했다. 모든 사고에는 백 프로 과실은 없다고 크기의 차이이지 쌍방과실이다고 탓하지 말라하였다. 지쳐 쓰러져있기에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 슬픔의 눈물은 바다에 흘려보내고 남겨진 소금 덩어리 한 줌을 삼키며 살아가야 한다.



계절의 불청객이 감정의 몰입을 깬다. 윙 윙 거리며 뾰족한 입으로 나의 일부분을 차지하려는 모기 녀석 때문에 흐름이 깨졌다. 허공에 팔을 휘둘르며 쫓아보지만 끈질기게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서 정리를 하고 2차로 다른 곳을 가야겠다.


인근에 위치한 술집에서 간단히 안주 몇 개를 시키고 오미자 맛이 나는 술을 시켰다. 색다른 맛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달큼한 맛에 숨겨진 쓴맛이 오늘의 기분을 잘 반영하였다. 한잔에 추억의 푸념과 이별의 위로를 기울이며 마셨다.


때로는 취생몽사의 술로 씻겨주어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 그녀와 나처럼 사람에 상처받고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우리의 술잔 속에 나는 잊어버렸다. 미련의 한 줌도 슬픔의 연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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