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Thursday, a new word
달리기 Running
두 발을 번갈아 사용하여 걷기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운동
Running is moving faster than walking by using your feet alternately.
몇 해 전, 여름의 중간을 건너갈 즈음, 성인이 되고는 처음으로 운동을 목적으로 집 앞을 달렸다. 초등학생 시절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나는 지구력이 부족해 장거리는 생각만 해도 지치는 일이었다. 한창 한국에서 running 열풍이 불어도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이라 치부해 동참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하던 운동은 수영이었다.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물속에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건 운동이자 힐링이었다. 꾸준하고 싶었지만 점점 산만해지는 나의 일과에서 오고 가는 거리와 강습시간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점차 뒷전이 되었다. 일주일에 3-4번을 접어 내려가던 손가락이 1번도 채 접기 힘들어지자 실력과 함께 재미도 뒷걸음질 쳤다.
그러던 중 인스타 친구가 달리기 하는 걸 자주 업데이트해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해야겠고 시간은 부족하고… 그냥 집 앞만 가볍게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냅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숨이 찰 때까지 달렸다. 얼마 되지 않아 목 끝까지 차오른 숨과 갈비뼈의 통증에 내 두 다리는 멈춰버렸다. 거리 900미터, 속도 14.
예상보다 더 처참한 결과를 숫자로 확인하니 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발과 두 다리가 묵직해졌지만 가쁜 숨을 내쉬고 나니 몸 안에 쌓여있던 답답함이 빠져나간 듯 상쾌해졌다. 이 날, 30분 이내로 무리하지 말고 뛰어보자는 다짐을 했고, 2024년 7월의 다짐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매일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2-3번은 잔뜩 차오르는 숨을 내쉬다 보니 900미터였던 거리가 1년 만에 3킬로가 되었고 호기롭게 도전한 10km 마라톤에서 완주의 기쁨을 얻었다. 장거리는 맞지 않다 확신했던 과거의 판단이 완전히 뒤집혔다. 역시 사람은 변하기에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보통 오전시간에 러닝을 하는데 가끔씩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친구 덕분에 기분 좋은 일이 있어 이 감정을 글로 남겨본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친구는 매일 보호자와 산책을 나오는데 정신적으로 조금 다름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항상 놀이터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내가 달릴 때에도 그런 눈망울을 보냈다. 나는 완전 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속으로만 방긋 웃고 묵묵히 달렸다.
어느 날, 자주 보다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그 친구는 고개를 꺄우뚱해하며 나를 쳐다봤는데 그다음 바퀴에서 내가 보이자 반대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그다음 바퀴에서는 서로 손을 흔들었다. 이 작은 인사로 당시 살짝 다운되어 있던 나의 기분이 금세 행복으로 바뀌었다. 이 찰나의 온기만큼은 기계적인 계산이 닿을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인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없다.
겨울이 되면서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숙제가 되었다. 이불속의 포근함이 달리기를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어버렸고 어느덧 해의 숫자가 바뀌어 2026년이 되었다. 따뜻한 햇살과 공기로 봄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새싹처럼 피어올라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밖을 나갔다. 살짝 싸늘했지만 햇살이 따뜻해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이라는 단어는 그리움과 함께 설렘을 준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함께 달리거나 걷는 사람들을 보고 나뭇가지도 관찰하며 달리던 그때, 그 친구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여느 때처럼 손을 흔들고 지나가려는데 멀리서 손을 흔들더니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하이파이브!
함께 손바닥을 마주치고 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본 내가 반가웠나 보다. 겨우내 얼었던 공기가 따스해지고 굳어있던 내 마음도 스르르 풀려간다.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봄을 좋아하는 사람을 문학적으로 vernophile이라 부른다. 나는 완전한 vernophile이다.
나의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