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불안해지면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을 한다. 노래를 부르던 잠을 자던 욕을 하던 술을 마시던 무의식에서 나오는 자기만의 방어기제가 발동된다. 나 같은 경우는 정리다.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책을 읽으려 해도 글자가 튕겨져 나갔고 노래를 들어도 차분해지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긴 밤과 새벽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정리 덕분이었다.
그냥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그랬다고만 치부했는데 문득 내 불안을 잠재우는 나만의 방식이 정리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그 방의 모든 것들을 정리했다. 하나하나 정리를 하면서 어느 순간 내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은 거 같았다. 그렇지만 결국 잠은 들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은 몸과 마음이 아팠던 거 같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달랐다는 거.
어떻게 보면 내가 정리에 대한 강박이나 결벽증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뭐 깔끔한 편이지만 일상생활에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어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많지만 내 에너지도 한정 되어 있어 관심을 끄면 내버려 둬 지긴 하더라.
우리 집도 이렇게 말하고 나면 완전 반짝반짝 칼정리가 되어있을 거 같지만 내가 워낙 밖에 있기도 하고 맘먹었을 때야 잘하지 피곤하거나 귀찮으면 그냥 내버려 두기도 잘해서 특히 우리 집 옷방은 그야말로 (엄마표현을 빌리자면) 쓰레기장? 아 맨날 하던 말이 있는데 생각이 안 나네… 귀신 나오겠다? 거지소굴? 암튼 말도 못한다.
아무튼, 내 인생에서 내가 아예 날을 샌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데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고 그날 내가 했던 게 정리였고 그게 내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라는 걸 알았다. 지금은 정리하면 예쁘고 좋으니깐 정리를 한다. 특히 인스타용 사진 찍을 때는 필수. 그 화면 밖은 현실입니다 여러분. 인스타는 연출된 세상이에요. 내 이미지의 일부분도 연출일지도오.
일출 11분 전.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