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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408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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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희 Oct 16. 2024

사람

나라는 사람의 깊이는 사람이 만들어 준다. 원래는 책인지 알았다. 그래서 남들이 추천하는 책은 몽땅 샀다. 하지만 책을 샀다는 뿌듯함만 얻고 책은 우리 집의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의 절반도 나는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년 결심 중 하나는 집에 있는 책 전부 읽기이다.


지적허영심만 높고 욕심만 많아서 공간을 채우기만 채웠지 내 속은 하나도 못 채웠다. 내년은 내 밀도를 더 높이는 한 해로 만들어야겠다. 그만큼 글도 많이 써봐야겠다는 다짐을 강원국 작가 책을 보며 해본다.


나는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이 관계의 장점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소위 말하는 척을 하기가 용이하다. 열심히 사는 척, 있어 보이는 척, 아는 척 그야말로 척척박사를 할 수 있다.


얇고 넓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따금 한 번씩 만나야 한다. 오랜만에 봐야 된다. 그러면 최근 생긴 일이라던지 주변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것만 말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굳이 속마음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편이었던 나에게 아주 찰떡같은 관계였다.


20대의 나는 주변에서 항상 듣던 평이 있었다. 밝다. 바쁘다. 열심히 산다. 근데 벽이 있는 거 같다. 한 친구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전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희는 벽이 있는 거 같아’였다.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단 뒤에서 내 말을 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불쾌해했고 그 후로 어리석게도 이 친구를 내 친구리스트에서 배제해버렸다.


하지만 그 친구의 평은 정확했다. 나는 벽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만의 벽을 쌓아놓고 남들에게 좋아보이는 면만을 보여주며 뿌듯해했다. 나에 대해 나쁜 평이 나오는 건 견디지 못했다.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세고 멘탈이 약하니깐 비판을 들었을 때 수용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늘 칭찬만 듣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칭찬을 굉장히 좋아했다. 인정욕구가 강한 편이어서 칭찬을 들으면 더 듣고 싶어 두 배 세 배 열심히 했지만 혼났을 경우에는 완전 쭈구리가 되서 잘하던 것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커서도 칭찬을 듣기 위해 나의 좋은 면만 보여야 되는데 관계가 깊어지면 나의 약한 부분을 노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얕고 넓은 관계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관계의 단점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은 많다. 그런데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슬픈 일이고 당시의 내가 불쌍하다. (그때의 나는 아주 행복했음. 바보) 당연한 결과다. 진짜 나를 밝히지 않으니 알 수가 없지.


세상에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 내 깊은 마음을 다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된다. 그래야 인생에 위기가 왔을 때 버텨낼 힘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감정적인 동물이다.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런데 그 생각을 잡아주는 게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공허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나는 나를 좋아했고, 내가 최고였고, 다른 사람들을 좀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티는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진짜 재수 없는 스타일).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잘난 것도 없었는데 왜 그랬던 건지.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도 내 약한 면을 노출할 필요도 없었던 거다.


맨날 나 잘났다고 살아가는 데다가 빈틈도 안 주고 속마음도 안 내비치고 기브 앤 테이크가 정확하니 나 같아도 적당히 친하게 지낼 수는 있어도 더 깊어질 생각은 안 했을 거 같다. 아니 못하지 틈을 안 주는데. 그러니 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이렇게 재수 없는 20대를 보내다 내가 내 생각보다 그렇게 잘난 건 아니라는 진짜 현실을 만나게 된 순간, 나를 버티게 만들어 준 건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치기 어린 나의 생각과 나의 무지를 반성했고 깨달았고 인정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사람이 좋고 알고 싶고 존경한다. 누구에게나 늘 배운다. 이제는 부족한 나라는 사람의 밀도를 사람을 통해 높여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빠는 건배사를 할 때 항상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뻔하고 상투적이지만 사랑 아니고는 그 마음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기에 매번 그 말을 하는 거겠지. 개인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걸 설레하지만 지금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격이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일출 22분 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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