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0408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희 Oct 19. 2024

친구

20대 때 한 순간에 여러 명의 친구들에게 손절당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그럴만했다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되돌려보려 고군분투도 해봤지만 어쩜 단 한 명도 나는 내 편으로 돌리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혹독한 경험으로 깨달았다.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패의 순간들은 무수하지만 다수가 등을 돌려버리는 상황은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고 받아들이긴 조금 힘들다. 그래서 그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은 정신승리였다.


어차피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은 떠난다. 그 친구들은 나랑 안 맞는 사람들이었고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가는 인연이 있으면 오는 인연도 있다. 라는 말들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가는 인연이 있으니 오는 인연도 생겼다. 이 친구들은 내 대학교 때 친구들인데 걔네는 이런 속사정을 모를 것이지만 이 시기에 나를 포함한 4명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모임이 하나 생겼다. 나는 여기에 심적으로 의지했고 말로 풀어놓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이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 이 친구들한테는 다 맞추는 사람, 예스맨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의 사건으로 내가 정신승리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상처는 상처고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다. 그 이후 나는  사람에 대해 더 소극적이고 폐쇄적이 되었다. 내가 맘 편한 친구들만 만났고 갈등상황은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했고 내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새로운 관계는 깊게 만들지 않았다. 기회가 생겨도 내가 벽을 치니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던 상대도 그 벽을 느끼고 돌아갔다.


내가 상처 줄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는 이런 상태가 나는 좋았다. 그러다 언젠가 울 언니랑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알았다. 생각보다 그 일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살다 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예전의 나는 후회 잘하는 일에도 아주 탁월했는데 처음의 사건은 두고두고 후회가 많이 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이 돌아서는 건 그 친구들도 잔인한 면이 있지만 결국 내 탓이었던 거다.


지금은 나도 내 잘못을 잘 알고 있지만 한 번 깨어진 관계는 유리랑 같아서 다시 붙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근데 내가 왜 불가능이 아니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냐면 깨어진 관계를 몇 년 만에 다시 이어 붙여 지금까지 유지시키고 있는 경험이 한 번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 덕분에 지금은 내 정신승리가 더 잘되고 있어 마지막 그 친구에게 무지 고맙다. 그래서 결론은 뭐다? 인생처럼 인간관계도 정말 내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조건 없이 잘해주면 된다.


일출 12시간 전. 논산

이전 06화 사람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