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Thursday, a new word
유언 遺言
1.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김. 또는 그 말.
2. 법률. 자기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여 행하는 단독의 의사 표시. 만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유언의 방식으로는 자필 증서, 녹음, 공정 증서, 비밀 증서, 구수(口授) 증서 따위가 있다.
잘 사는 법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법도 중요하다. 인생을 어떻게 잘 살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어떻게 잘 죽을지에 대해선 별로 회자되는게 없어 보인다. 지금껏 여러 차례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면서 나의 마지막에 대해 가끔 생각했었다. 계획은 오늘 하루와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지만 잘 죽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불의의 사고로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될 수도 있고 병에 걸려 병원 혹은 다른 공간에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잘 죽는 법에 대한 첫 번째 나의 생각은 글이다. 나의 마지막을 글자로 정리하기. 언젠가 작성해야지라는 다짐은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기 급급해 한쪽에 덩그러니 밀어놓았다. 그렇게 먼지가 쌓여가던 어느 날 내가 애정하는 선생님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던 분인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과 나눈 카톡을 쭉 훑어봤다. 족히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나에게 선생님은 늘 고마움의 표현과 존중하는 호칭을 담아주셨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엔 애정이 담긴 이모티콘을 붙이곤 했다. 12월, 31일 자로 내려둔 내 호칭의 마무리 업무를 하던 중 선생님이 생각나 카톡을 보냈다. 혹시나 하는 긍정의 마음과 혹시나 하는 부정의 마음이 섞여 차마 전화는 하지 못하고 카톡을 남겼다. 바로 1 표시가 사라졌다.
기대했던 답장은 선생님이 아닌 가족의 손길이었다. 담담하면서도 간결한, 가벼운 물결표시 속 얼마나 깊고 깊은 아픔이 꾹꾹 눌러져 있는지 짐작도 할 수도 없었다. 서둘러 안부인사를 마쳤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저릿한 고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옅어지는 것처럼 선생님에 대한 걱정도 일상의 시간들이 쌓이며 내 시야에서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다.
사람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다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혹시나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해 메시지를 보냈다. 혹여나하는 생각에 고민이 되었지만 선생님을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족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자판을 두드렸다. 짧은 답장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됐다.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메시지가 덧붙여졌다. 종교는 없지만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날 이후로 선생님이 생각나면 짧은 기도를 한다. 눈물이 많은 나는 선생님의 사진을 본 이후로 선생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샘이 터지려 한다. 사진은 딱 한 번만 보았는데도 머릿속에 누워계신 선생님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래서 기도한다. 선생님이 예전처럼 나를 향한 애정의 메시지를 보내주실 수 있기를.
요즘 들어 더 자주 오늘과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하는 나지만 사실은 아니다. 상실의 고통은 가장 회피하고 싶은 경험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로 밤새 뒤척이다 뜬 눈으로 맞이하는 새벽은 따뜻한 차의 온기마저 금세 식혀버린다. 상실은 시야에서 단순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린 나무를 통째로 뽑아 빈 공간을 드러내는 일이다. 공간의 여백은 그만큼의 아픔이 되고 시간의 흐름은 공간을 넌지시 바라볼 여유를 줄 뿐이다.
선생님의 경계를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마주하게 될 선이 떠올랐다. 이 경계선은 삶의 태도를 묻는 질문이 되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말들을 꺼내게 만들었다. 너무 많은 회피 속 버려졌던 하루하루를 더이상 후회라는 단어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면 그게 나의 마지막 버전이겠지. 사실 이 공간에 작성했다가 이건 진짜 나를 위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줘야 할 것 같아 한쪽 파일에 따로 저장했다. 노트가 한 권 정해지면 나의 필체로 남겨야겠다.
대신 여기엔 그 생각의 일부를 남겨본다.
2026 ver.
인생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느끼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나를 채웠다.
나를 기억하며 짧은 울음 뒤 긴 웃음을 지어주길. 한 번쯤은 내 생일에 나를 떠올려주길.
사랑이 가득했던 나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 2026.1.8.목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