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혼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현실
그래도 결혼하고 나니 확실히 안정적이지 않아?
난 내 미래가 너무너무 불안해 요즘...
이젠 정말이지 낼모레 마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불안하다는 단어 앞에 붙은 ‘너무너무’라는 수식어가 진심으로 느껴졌다. 나까지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도 결혼하지 않았고 남자 친구도 없는 삼십 대 후반 싱글 여성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그 친구와 내가 함께 소속된 무리의 친구들과 카톡방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 욕을 신나게 하던 유부녀 친구 중 한 명이 싱글인 그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결혼하지 말고 살아 00야! 너의 자유로운 삶을 보며 대리 만족한다 내가”
진심 부러운 마음에서 꺼낸 얘기 같았지만, 싱글인 그 친구의 반응은 싸늘했다.
“난 너의 대리만족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 너네 다 결혼했다고 막말하지 마렴”
카톡방에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글을 모두 읽었지만, 아무도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흔히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하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는 결혼하지 마라’ 또는 ‘50에 해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본인은 이미 결혼을 했기에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곧 결혼을 앞둔 한 친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의 예비 남편을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 남편 못지않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술 좋아하는 남편에 데인 경험이 있는 나로선 진심으로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술 취한 남편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지난밤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마흔을 앞두고 그토록 원하던 결혼을 하게 된 행복한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나에겐 그 언니의 결혼을 말릴 자격도 없고, 그 예비 형부가 우리 남편과 같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게다가 내가 그런 말을 한들 콩깍지가 씐 언니에게 내 말이 들릴지 만무하니까.
쫓기듯 결혼하는 건 싫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황은 더 싫어
앞서 언급했던, 마흔을 앞두고 싱글이라 까칠해진 친구는 말했다. 결혼이 조급하다고 아무나 만나고 싶진 않은데 결혼하지 않고 한 살 더 먹으려니 그 또한 너무 우울하다고.
몇 년 전 나이 마흔이 되자 자신의 직업은 이제 ‘노처녀’라며 한국을 떠났던 언니도 생각이 났다. 그 언니는 외국에 간 이후로 나이를 잊고 지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결혼하든 안하든 불행한 것 같은 이 사회, 이 상황, 대체 뭐가 정답인 걸까?
결혼이라는 숙제
우린 모두 과정 속에 있다
결혼해서 좋은 점 같은 건 애초에 없다. 마치 학생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졸업 후 취직을 하는 것처럼 결혼 또한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물론 처음엔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해방감에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어려운 A 문제를 풀고 나니 더 어려운 B와 C문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에 집중하느라 A라는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다행이라고 느끼는 건 A라는 문제를 끝냈기 때문이지만, 나보다 늦게 A를 푼 친구가 나보다 빨리 B, C를 풀어낼 수도 있는 것이기에... 결혼을 하든 안하든 모두 각자의 산을 올라갈 뿐이다.
아직 결혼 6년 차, 돌아보면 부끄러울 초짜 결혼 문제에 허우적대고 있는 나의 귀여운 일기를 보며 부디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누군가가 팁을 얻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그거라면 현재로서는 만족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