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과 눈과 등원과 지각 사이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아니 사실 그 하얀 세상을 볼 정신 따윈 없었고,
남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앞엔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가 촤르르 밀려왔기에...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a를 하면서도 계속 bcd에 대한 우선순위를 따지느라 마음이 바빴다.
"00야 눈 엄청 많이 왔어! 온 세상이 하얘"
남편의 외침을 들은 아이는 자다가 그야말로 벌떡 일어났다.
한달음에 거실 창문으로 달려가 눈을 본 아이는
"첫눈이다"라고 외치며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흥이 많은 아이라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머리를 감고, 말리고, 화장을 하고,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리고,
아이가 입을 옷을 꺼내어 준비해 둔다.
미역국에 꾹꾹 밥을 말아 아이 입에 한 숟갈 넣고
아이 내복을 벗기고 외출복을 입힌다.
다시 한 숟갈 먹인 후, 머리를 묶인다.
감기약을 먹어야 했기에 내 입에도 한 숟갈 밀어 넣어본다.
그 와중에도 방울토마토가 사과고, 자기는 공주고, 나는 마녀라며 역할 놀이를 놓지 않는 아이.
"공주님 이 사과 좀 먹어봐요" 영혼 없는 멘트를 날리며 아이 입에 밥숟갈을 밀어 넣는 것을 놓치지 않는 나.
아침이면 왜 이리 시곗바늘은 빠르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겨우 현관문을 나섰지만, 눈이 신기한 아이는 만지고 꾹꾹 밟느라 바쁘다. 바쁜 마음 한가득인 엄마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며 핸드폰 카메라를 켜본다.
하얀 세상은 3분 거리 등원길을 10분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늦어버린 출근길, 택시에 몸을 싣고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그제야 생각해 본다.
내가 상상했던 등원길의 아침은 이게 아닌데...
아이와 신나게 눈놀이를 같이 해줄 여유가 없는 엄마라 미안해.
찍었던 눈 속의 아이 사진을 다시 꺼내어보며
과연 언제까지 9 to 6 생활을 지속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이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인데 내가 배부른 소릴 하는 걸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과연 아이의 영혼을 더 충만하게 해 줄 엄마가 될 수 있는 걸까?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지친다.
새하얀 세상을 보며 회색빛 마음이 올라오는 이런 날엔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