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인 May 10. 2023

손으로 쓰는 글_숨

하루 20분 손글쓰기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술에 취해 울먹이며 할아버지에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 한편에 있는 작은 방에 누워 아빠가 술에 취해 또 무슨 실수를 할까 불안해하며,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내 의식을 붙들었다.


"아버지,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아요?

.....

숨만 쉬면 사오..숨만 쉬면 산당께."


순간 이 짧은 두 문장이 햄릿의 대사처럼 강렬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숨만 쉬면 산다'는 아빠의 말을 굳이 이러저러하게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강렬한 메타포, 시처럼 마음에 간직한 채 이따금 꺼내보고 싶었다. 살면서 불쑥. 그 말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보다 훨씬 일찍 세상을 떠난 성질 급한 아빠가 문득 생각날 때, 그리고 오늘은 우연히 책을 읽다가 '숨'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날의 햄릿 같았던 아빠의 대사가 떠올랐다.


창조적인 영감을 얻었다고 표현할 때 쓰는 '영감(inspiration)'이 실은 숨을 들이켬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 형상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어 생명으로 창조했듯이, 숨을 들이켠다는 것은 새로운 영감, 창조,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세상에 숨을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유기체의 생명 반응이므로. 하지만 죽는 순간이 되면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숨을 의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사람의 호흡은 조금씩 점점 희미해져간다. 나는 점점 멀어져 가던, 마침내 꺼져버린 아빠의 마지막 숨을 기억한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숨'에 대한 영감을 발산하던 젊은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으로 쓰는 글_오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