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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Oct 16. 2023

손으로 쓰는 글_심란

마음은 본래 심란한 것일까 아니면 평온한 것일까?


상담에 찾아온 내담자들에게 상담을 통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좋겠는지 물으면 종종 "그냥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마칠 때 기도손을 모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빕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가 보다. 반면 심란해지기는 얼마나 쉬운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 뜨자마자 업무 메시지라도 오면 출근 전부터 심란해진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에는 하루 온종일이 통째로 심란하다. 때로는 외부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그냥 마음이 어수선하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토록 취약한 것일까?


스코틀랜드 출신의 대상관계 정신분석가 페어비언(Fairbairn)은 인간이 탄생 초기에는 어느 정도 통합된 전체적인 존재로 출발한다고 보았다. 이는 유아의 마음이 파편화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통합된 존재가 되어간다고 말한 프로이트와 다른 대상관계 이론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최초의 통합된 상태로 존재하던 마음이 출생 이후 겪는 여러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에 분열된다고 설명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적 상태(split position)가 인간의 성격 발달의 기초가 되는 최초의 자기(self) 구조라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은 평안보다는 끊임없는 갈등, 어쩌면 전쟁과 가깝다. 내면의 자아와 여러 대상들이 마치 세포 분열하듯이 쪼개져 점점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있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는 표현도 분열된 마음 상태에 대해 직관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마음이 가장 취약했던 시절에 실제로 내 마음을 누가 양갈래로 찢어놓은 듯한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다. 살면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주 아주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이었다. 사고는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이었으며, 나만 빼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시절을 나는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그냥 하루하루를 꼬박 꼬박 살았던 기억밖에 없다. 안 써지는 논문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대학원 논문방에 자리 잡고 일단 앉았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을 땐 눈 감고 잠만 자는 아빠 옆에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생계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다 참았던 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날에는 길바닥을 걸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같이 걷던 후배는 엉엉 우는 내 옆에서 그냥 함께 걸었다. 따뜻한 밥 해줄테니 오라는 동기 언니네 집 식탁에 앉아 언니가 해준 따끈한 국물을 마시며 또 울었다.


마음이 두 쪽으로, 아니 여러 갈래로 파이고 찢어졌던 시절이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애초에 마음이 찢어진 것도 사람 때문이지만 마음이 다시 온전해진 것도 사람 덕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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