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존중받는다고 느낄까?
아기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육아 관련 유튜브와 대중 서적을 접하게 된다. 얼마 전에 우연히 추천된 영상으로 한국 몬테소리 전문가 정이비 교수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아기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몬테소리 철학을 잘 보여주는 한 일화를 들려주었는데, 사람들이 흔히 쉽게 이야기하는 '상대를 존중하라'는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했다.
6개월 된 한 아기가 집에서 장난감을 갖고 누워서 놀고 있었다. 이때 그 집 할머니의 친구분이 집 앞을 지나가다 아기가 보고 싶어 잠깐 방문을 했다. 누워서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놀고 있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 안아보고 싶은데, 아기 엄마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유, 아기 한 번 안아보고 싶은데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아기 엄마가 이렇게 답한다. "네, 사실 저도 안아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전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 저 모습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기도 마음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깝게 밀착된 가족과 사회관계 망에서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기도 하다. 사랑스러운 어린 아기를 보고 한 번 만져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누군들 안 생기랴. 하지만 자신의 욕구보다는 지금 이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함께 있어주는 것. 아이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애정을 절제하고, 적정한 거리로 물러나 기다려주는 것. 이러한 세심한 존중으로부터 아이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그들과 유기적으로 연대하는 '연결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되리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애정과 관심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함부로 충고하고 조언하는 사람보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 그저 지켜봐 주는 사람이 더 고마운 법이다. 나를 그렇게 지켜봐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두 개의 큰 도덕적인 힘을 구별하였다. 하나는 가까워지는 것(coming close), 이것이 사랑이다. 다른 하나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maintaining distance), 이것이 존중이다.
존중은 타인에게 공간 및 자율성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중하지 않는 것은 통제하고 소유하며, 침해하고 비하하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좋은 관계는 이 두 가지 도덕적 힘이 균형을 유지한다고 주장하였다.
- <애착 정신화하기, 인간중심의 상담> 중, Jon. G. Allen
사랑과 존중의 씨줄과 날줄 속에서
인간은 세상과 연결돼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