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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Sep 01. 2023

손으로 쓰는 글_애착

이따금 베란다 창문 쪽에서 난데없이 벌이 날아들어올 때가 있다. 분명히 창문이 다 잠겨있는데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찾아 들어오는 건지. 그 좁디좁은 구멍을 애써 찾아 기어이 거실로 날아들어온 녀석이 맥없이 바닥에 떨어져 일어나질 못한다.


아이가 하이체어에 앉아 창문 밖으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을 때, 나는 거실 바닥에 떨어져 날개와 다리를 떨고 있는 이름 모를 벌 한 마리에게 자꾸만 시선이 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부르르 떨던 녀석은 금세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좁디좁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구멍으로 날아들어올 때 날개라도 다친 것일까, 다리라도 부러진 걸까.


아이가 일으켜달라는 소리에 후다닥. 잠깐의 연민을 거두고 아이와 거실 바닥에 앉아 놀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이고, 잠시 산책도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또 해질 무렵이다. 다시 저녁을 먹이려 아이를 의자에 앉혔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녀석이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다.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네, 중얼거리며 휴지를 들고 벌을 집었는데, 세상에 녀석의 날개와 다리가 아직도 꿈틀대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몸 밖으로 배설물도 나와있다. 질긴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녀석에게 나는 잠시 마음을 빼앗겼다. 이 질긴 생명력, 생을 향한 애착과 몸부림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하찮은 미물에게도 여전한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애착’ 이란 단어의 생생한 의미를 몸으로 체감할 때가 있다.


愛着 [사랑 애, 붙을 착]

[사전적 정의]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


정신분석 애착이론에서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초기에 주양육자와 좋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느냐 아니냐가 성인기까지 평생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엄마 뱃속에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엄마에게 애착함으로써 세상이 믿을만하고 안전하다는 기본 신뢰감을 쌓게 된다. 부모가 엄마 껌딱지 시기를 잘 견뎌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아이만 부모에게 애착하는 것일까? 아니다. 부모도 아이를 키우면서 점차 아이에게 애착하는 마음이 자라난다. 나는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아기를 껴안고 울고 웃고 부대끼고 갈등하고 환희하고 즐거워하는 시간들을 겪으며 모성애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 활짝 핀다고 여긴다.


모성애와 애착으로 만들어진 이 끈적한 굴레는 죽지 않는 한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강렬하고 맹목적이며 가슴 뜨거워지는 굴레는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가끔 두렵다. 소중한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기에.


이름 모를 벌의 죽음을 바라보다 문득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애착이 눈물겹게 느껴졌다.



* 벌인 줄 알았는데 글을 쓰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꽃등에였다. 벌과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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