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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Aug 25. 2023

손으로 쓰는 글_평균으로의 회귀

아이는 욱하고 화내는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짜증 내고 소리 지르며 우는 아이에게 오늘도 결국 욱하고 말았다. 요즘 재접근기*에 들어선 것이 완연한 아이는 자기주장과 고집이 엄청 세졌다. 고집부리고, 떼쓰고, 발 구르고,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달래도 보다, 큰 소리도 내보다, 내가 엄마로서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과 회의감까지 달라붙어 어느새 심신이 피폐해진다. 그 와중에 어떻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웠는지. 지나간 하루를 더듬어보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어 보지만 애꿎기만 하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아직 미숙한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매 순간 좌절과 실패감을 마주해야 하는 아이는 그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엄마인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내 주지도, 나 스스로 견뎌내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그러다 이것 또한 다 한 때다 하며 위안해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잠시 딴 세계로 피신하기도 하다, 결국 이렇게 자리에 앉아 펜을 든다.


통계학에는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ward the Mean)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결과는 결국 평균에 가깝게 되돌아오는 경향을 보인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유전학자가 처음 만든 것으로 그는 인간의 키가 유전될 거란 가설 하에 신장의 유전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관찰 결과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는데, 평균보다 키가 큰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키가 작은 경향이 있고, 평균보다 키가 작은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키가 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자연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키가 큰 사람들이 계속해서 키가 큰 자식만 낳는다면, 반대로 키가 작은 사람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키가 작은 자녀를 낳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거인과 소인으로 양분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평균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기에 키가 크고 키가 작은 사람이 있더라도,  대게는 거기서 거기, 고만 고만한 인류의 모습이 유지되는 게 아닌가.


아이 얘기를 하다 왜 갑자기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궁금하시리라. 이 글을 쓰면서 처음 던진 질문에는 사실 내가 바라는 답이 있다. '아이는 욱하고 화내는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바라는 답은 ’ 기억하지 못했으면 ‘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괴로워하다 찾은 대안이 바로 이 ‘평균으로의 회귀’다.


감정에도 분명 최악과 최고가 존재한다. 가장 행복한 절정의 순간은 최고점, 오늘처럼 신경질 부리는 아이와 실랑이하며 겪은 온갖 부정적 감정은 최저점. 그렇게 최고와 최저의 순간이 섞여 ‘견딜만한’ 또는 ‘그럴 수 있어’ 할만한 상태로 회귀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최고로 좋은 엄마와 최악으로 나쁜 엄마의 경험이 늘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 반복된 경험 속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닌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엄마’가 마음속에 자리하길 간절히 바란다.



* 재접근기(화해기) : 생후 18개월 경에 다다르면 유아는 이전 단계에서 엄마로부터 떨어져 활발히 세상을 탐색하던 시기를 지나 점차 엄마와 분리됨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엄마와 함께이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향해 탐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양가감정을 경험한다. 이 시기의 유아는 분리불안이 심해지며, 매달리다가도 떨어지려는 등 양가적인 행동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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