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를 경험한 요즘 세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체념의 표현이다.
올해 제가 많이 들었던 노래 TOP 10
1.Miguel, R.A.N.
2.Post Malone, Goodbyes Ft. Young Thug
3.Jonas Brothers, Sucker
4.Taylor Swift, ME! Ft. Brendon Urie
5.BUSH, BULLET HOLES
6.Drake, Money In The Grave Ft. Rick Ross
7.Billie Eilish, Bury A Friend
8.OneRepublic, Rescue Me
9.Lewis Capaldi, Hold Me While You Wait
10.Ed Sheeran, Take Me Back To London Ft. Stormzy, Jaykae & Aitch
최대한 제 취향을 배제하고 뽑아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즐감해주세요!
[후보] 이달의 소녀(LOOΠΔ), Butterfly (XX, 2019)
그녀들의 앨범 <X X>가 미국 아이튠즈에 1위를 차지할 만큼 요즘 아이돌 음악은 최신 POP 트렌드가 녹아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의 <부작용>’가 대표적이다.
이 곡을 최종적으로 택한 이유는 확실히 기존 여돌 노래답지 않아서다. 이를테면, (여자)아이들의 <LION>도 굉장했지만, 아직 국내 시장에 먹힐 패턴에 맞춰서 제작한데 반해 이곡은 확실히 안무부터 모든 기획이 여타 아이돌과 달랐다. 앞으로 K-POP은 더욱더 부유감을 강조하는 형태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후보] Tyler, The Creator EARFQUAKE (IGOR, 2019)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이번엔 ‘IGOR’라는 캐릭터를 내세운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다. <EARFQUAKE>은 그 뜨거운 연정을 천재지변에 비유한다.
갈수록 빨라지는 영화편집처럼 사운드 디자인도 복잡해졌다. 찰리 윌슨의 백보컬를 잘게 잘라서 3분짜리 곡 전반에 골고루 뿌려놓는다. 플레이보이 카티의 피처링마저도 다른 노이즈와 제시 윌슨의 백보컬을 집어넣어 놓았다. 디지털로 보컬을 왜곡하거나 각종 효과음을 활용하거나 재즈, 네오 소울, 신스 팝, 두왑(Doo-Wap) 등 어느 장르로 규정해야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멜로디마저도 겹겹이 쌓아올렸다. 그런데도 교통정리가 의외로 잘 되어있다. 그 비결은 뭘까?
마치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케빈 파이기’의 지휘아래 통일성이 유지되듯이 타일러는 ‘비치 보이스’을 참고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일관되게 정리했다. 가끔 그의 놀라운 상상력이 지나치게 넘쳐흘렀던 지난날은 이제 안녕이다. 그의 성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후보] 유산슬, 사랑의 재개발 (뽕포유, 2019)
EBS 연습생 펭수와 더불어 신인가수 유산슬은 올해의 핫한 스타다. 만약 유산슬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악을 얘길할까 싶다.
귀에 쏙쏙 박히는 강렬한 후렴구, 음원차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요란한 인트로, 그와는 반대로 확 다운시키는 엔딩까지 히트곡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후보] Clairo, Bags (Immunity, 2019)
아직 일본의 아이뮹(あいみょん)만큼 폭발력은 없지만, 클레어오는 한국의 황소윤(새소년)처럼 지켜볼만한 인디 팝스타다. 썸 탈 때 느껴지는 성적 긴장감을 그리고 이어지는 슬픈 예감을, 단순한 기타 코드, 절제된 드럼 필, 중간중간에 환기시키는 건반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쿨하게 있는 그대로를 전시한다.
[후보] 요네즈 켄시(米津玄師), 馬と鹿 (말과 사슴) (싱글, 2019)
미국의 빌리 아일리시가 있다면, 일본에는 요네즈 켄시가 사토리 세대(일본의 N포세대)의 불안과 우울을 제대로 저격한다. 올해 J-POP 최대 히트곡 중 하나라고 해서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일본의 아이유’라 불리는 아이뮹, back number, Official髭男dism, RADWIMPS같이 여전히 J-Rock를 하고 있구나하고 완전 오판하고 있었다.
J-POP의 토양 위에 바로크 팝(실내악)을 이렇게 조화시킬 줄은 몰랐다. <Flamingo>이 일본 민요와 얼터너티브 R&B, 라틴 음악을 크로스오버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전부 제 불찰이다.
#10 : POP SMOKE, WELCOME TO THE PARTY (Meet The Woo Vol. 1, 2019)
올해의 랩송은 원래 기막힌 샘플링을 재배열한 프레디 깁스와 매드딥의 <Crime Pays>을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메인스트림은 여전히 트랩이 대세지만, 이번엔 과감하게 드릴(Drill)에 베팅하겠다. 이 신종 장르는 ‘시라크(Chiraq: 시카고+이라크)’라 불리는 범죄 도시 시카고에서 태어난 트랩의 일종이다. ‘드릴(Drill)’이라는 이름은 ‘자동화기(Automatic Weapon)를 나타내는 속어였으며 여기서 파생한 투쟁과 보복에서 뜻한다.
50센트의 <Get Rich Or Die Tryin(2003)>이 절로 떠오르는 팝 스모크의 묵직한 래핑에다 영국 출신 프로듀서 808Melo가 더욱 영국(그라임)스러운 베이스라인을 잔뜩 깔았다. 과연 드릴이 2020년대를 점령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9: Lewis Capaldi, Someone You Loved (Divinely Uninspired To A Hellish Extent, 2019)
올해 K-POP에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가 있었다는 해외시장에서는 이 곡이 있었다. <Someone You Loved>은 현재 스트리밍 시장에 통용되는 히트공식에 역행한다. 인트로부터 길고 길게 호흡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휘몰아치는 선율의 파도로 듣는 이의 마음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스코틀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루이스 카팔디가 약 6개월 동안 곡을 쓰면서 이별을 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만한 감정들을 하나씩 오선지에 옮겨 적는다. 피아노와 목소리로 그 아픔을 오롯이 전달한다. 컴퓨터로 여러 악기를 쉽게 배열할 수 있는 시대에 그는 모바일이 존재하지 않던 80년대 브루스 스프링스틴, 제임스 잉그램, U2 혹은 몇 년 전의 아델, 샘 스미스처럼 인간만이 교감하는 생생한 느낌을 전한다.
#8 : Lil Nas X, Old Town Road (Ft. Billy Ray Cyrus) (7, 2019)
2019년 현재 히트곡의 정의를 내린 트랙이다. 릴 나스 엑스는 원래 니키 미나즈의 트위터 팬 계정을 운영하며 그녀의 영상을 이용해 ‘밈’을 제작했었다. 그런 그가 나인 인치 네일즈의 <34 Ghosts IV(2008)>을 샘플링해서 15초짜리 영상 애플리케이션 틱톡(TikTok)에 올리면서 카우보이를 흉내내는 챌린지가 대 유행하고, #OldTownRoad와 #YeeHawChallenge 해시태그가 SNS를 도배하기 시작한다.
거기다 장르성이 모자라다며 <Old Town Road>가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퇴출되는 소동이 벌어지면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대중음악은 미학적 완성도보다 대중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19주로 빌보드 최장 연속 1위 기록을 갈아치우며, 소비자가 컨텐츠 생산자가 되는 1인 미디어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사례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7 : Hope Tala, Lovestained (Sensitive Soul EP, 2019)
조지 마이클의 <Jesus To A Child (1996)>이후로 보사노바와 R&B가 이토록 자연스레 녹아든 사례가 있었을까?
호트 탈라가 런던출신이라는 것 외에 검색을 해봐도 뭐가 없다. 그렇지만 탈라의 이 노래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얼마전 타계한 보사노바의 별, 주앙 지우베르투가 연상되는 기타가 연상되고, (그 선율 위로) 카리브 해의 시원한 바람처럼 드럼을 슬쩍 올린다. 1998년 미국 랩 라디오에나 흘러나올 법한 베이스가 더해진다. 힙합, 보사노바, R&B가 사이좋게 웃고 있다.
#6 : Big Thief, Not (Two Hands, 2019)
포크는 힙합 이전에 대중음악에서 가장 문학적인 장르이다. 브루클린 출신 포크록 밴드 빅 씨프는 완벽에 가까운 고뇌의 노래 "Not"를 발표한다. 애드리안 렌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을 씁쓸하게 노래하고, 이글거리는 기타의 분노가 발화점을 넘쳐흐를수록 렌커의 보컬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필사적이 된다. 그녀는 절박하게 의사소통을 하지만, 기타와 드럼소리가 목소리가 하지 못한 느낌을 대신 전달한다.
불교의 공(空)사상 혹은 데이비드 흄의 인과 회의주의처럼 ‘부정(Not)'함으로써 참된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예술은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철학을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5 : Mannequin Pussy, Drunk II (Patience, 2019)
올해의 이별 노래 중 하나다. 마리사 다비체(Marisa Dabice)는 ‘질질 짜기만 하는 발라드 따위에 지지마!’ 라며 멘탈이 깨진 정신세계로 안내한다. "내가 너를 불러낸 밤들을 기억하니?" 라며 옛 남자친구에게 되묻는다. "난 아직도 널 사랑해, 이 멍청한 자식아."라고 술기운을 빌려 지나간 사랑을 노래한다. 그 절절한 진심 때문에 왠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술 취했을 때의 변동성, 즉 정신 줄을 놓아버린 공백을 정확히 음악에 담았다. 곱게 화음을 쌓아올리고, 예쁘게 다듬어진 멜로디로 이별을 미화하는 발라드가 놓치는 멘탈이 깨진 순간을 녹음했다. 헤어짐을 뽀샵질하지 말고, 이별의 생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Drunk II"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4 : Little Simz, Selfish Ft. Cleo Sol (Grey Area, 2019)
힙합에서 '참회록'이 나올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27살의 리틀 심즈는 자신의 앨범을 소개하면서 과거의 실수에서 자라고 배웠던 방법을 담았다고 한다. 실제 자신의 20대가 마치 불확실한 회색 지대(Grey Area)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앨범 곳곳에 드러난다.
<Selfish>에서 “당신은 좋은 와인처럼 성숙하게 해야만 했습니다.”며 어릴 적에 이기적인 면을 자책한다. 이브(EVE)의 <Rapsody>이 ‘블랙 우먼 임파워링(Empowering)’에 집중했다면, 리틀 심즈는 전 세계 20대들이 안고 있는 고뇌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녀의 소꼽친구인 인플로(Inflo)에게 프로듀서를 맡긴 점도 좋았다, 음악으로 안개가 뿌옇게 낀 미래를 표현하면서 일반적인 힙합 작법과는 거리가 멀다. 전통적인 기악형태로 실제 악기의 질감에 집중하는 연출은 많은 청춘들이 품고 있는 불안감을 다 함께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3 : Lizzo, Cuz I Love You (Cuz I Love You, 2019)
리조는 삐쩍 마른 연예산업계의 오랜 관습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녀는 큰 엉덩이를 감추거나 살집 있는 몸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부끄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당히 고개 들 것을 요구한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일갈한다.
당신 내면의 악마 ‘외모지상주의’를 버리라고 설득한다. 같은 여성끼리 미모로 서열을 나누지 말자고 주장한다. 리조의 일관된 언행일치에 보수적인 그래미마저 그녀에게 ‘최다 노미네이트’라는 왕관을 씌워준다.
#2 : Sharon Van Etten, Seventeen (Remind Me Tomorrow, 2019)
17살 때 나는, 일단 가보자고 결심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시기.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 그 빛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 버리는, 그런 시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청춘이 끝나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2017년 아들을 출산한 샤론 역시 그래서 이 곡을 썼는지 모르겠다. 불안한 신시사이저가 방황하는 청춘을, 둔탁한 드럼 소리가 무모하게 돌진하는 청춘을, 가끔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기타 음은 실패를 경험하는 청춘을 상징한다.
대중문화가 정치적 올바름을 따를 때조차, 이럴 때일수록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예술품은 ‘한 개인의 솔직한 경험담’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증거다.
#1 : Billie Eilish, Bad Guy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
빌리 아일리쉬는 바람 피운 년놈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전혀 다른 2곡을 하나로 이어붙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시점을 전환하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헤비메탈이 가르쳐준 자기 과시와 팀 버튼 같은 동화적인 호러, 칸예 웨스트의 <Black Skinhead>와 나인 인치 네일스가 일러준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종합하여 독창적으로 엮는다.
아일리쉬의 음울한 곡조와 폭력적인 가사는 불경기를 체험한 요즘 세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체념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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