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후기 미국인의 고통을 극복하다.

Dark Knight Rises 2012 영화 해석

by TERU

1. <배트맨 비긴즈>에 종속되다.


한마디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1편<배트맨 비긴즈>의 이야기를 2편<다크 나이트>의 어법으로 풀어낸 영화다. 먼저 시리즈를 정리해보자!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똑바로 쳐다봤고, <다크 나이트>에서 아치 에너미(숙적)에 맞서 싸웠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지난 두 편의 영화에서 배트맨이 일궈낸 모든 유산을 차례로 거둬들이는 영화다. 배트맨이 제일 적게 출연하는 배트맨 영화답게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결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다뤄야 할 이야기가 많고 등장인물이 많아서다.


먼저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3부작 중 가장 많은 조연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브루스 웨인와의 과거에 청산하지 못한 채무관계의 연장선에 서있다. 즉,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관통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어떤 관계망으로 얽혀 있으며 배트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베인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과 같은 스승 밑에서 사사한 동문이다. 웨인은 라스 알 굴의 유지를 거부했지만, 베인은 받들고 있는 차이가 있다. 경찰 존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는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로 자랐다는 점에서 브루스 웨인과 공통점을 가지며, 재력가 미란다 테이트(마리온 코티아르)는 사업 파트너로 위장했지만, 좌절된 아버지의 꿈을 현재에 이식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 전작 <인셉션>과 인물의 배치가 비슷하고, 인물의 동기는 <배트맨 비긴스>와 지나친 연관성 때문에 동어반복처럼 느껴진다. 물론 <두 도시 이야기>와도 매우 흡사하다.


유일하게 캣 우먼만이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 절도범에서 테러리스트의 조력자로, 배트맨의 파트너로 선과 악을 넘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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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의 ‘추락’의 모티브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반복된다. 1편의 박쥐 동굴과 3편의 라자러스 핏(땅굴 감옥)을 비교해보면 단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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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배트맨 비긴즈> 후기에서 언급했던 토마스 웨인의 대사를 다시 보자 “우리는 왜 자꾸 넘어지는 걸까? 그렇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Why do we fall? So that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는 3부작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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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배트맨은 베인에게 허리가 부러진다. 브루스 웨인으로나 배트맨으로도 추락을 경험하지만 감옥의 의사로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신에게 힘을 준다"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배트맨 비긴즈>의 주제인 '두려움'을 환기시킨다. 당연하게도 브루스 웨인은 제목 그래도 '일어서기(rise)'에 성공한다. <인셉션>의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이어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브루스 웨인은 땅굴 감옥에서 배트맨이 되기 위해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베인과 탈리아도 라스 알 굴의 유지를 이어받고자 고담의 혁명을 일으키고, 존 블레이크는 후계자로서 배트맨을 계승하면서 일어선다. 샐리나 카일, 제임스 고든, 폴리 부청장, 경찰관 3000명, 알프레드, 고담 시민까지 배트맨의 희생을 통해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 이것은 놀란이 당시 금융위기로 고생하고 있는 미국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일어난다(rise).’는 의미는? 1편에서 라스 알 굴은 로마의 멸망과 콘스탄티노플의 타락과 멸망, 그리고 런던 대화재, 경제공황을 그림자 동맹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는 테러에 맞서는 한 남자를 그렸다. 2편에서 하비 덴트와의 대화에서 시저를 예로 들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했다. 3편에서 세계는 기나긴 불황의 늪에 빠져있다. 그래서 놀란은 '양극화'를 화두로 삼는다. 1편과 2편의 개인의 도덕률을 뛰어넘어 3편에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덧붙여 3부작을 완성하기 위해 놀란은 1편과 2편과 달리 고전적인 영웅담을 제시한다. 그 내용은 이타적인 한 남자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몸을 내던진다. 우울한 영웅 3부작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담고 있다.




2. 혁명이 없는 혁명 이야기


그런데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앞선 2작품과 달리 현실 정치에 대입하면 약간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고담 시 묘사를 2011년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와 비교했다. 놀라울 만치 닮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면 이 영화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어울리는 장중한 서사극로 한정된다. 아담 스미스가 약속했던 시장에 맡겨두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영화 전반에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불릴 만큼 자본주의를 뒤 흔든 역사상 두 번째 사건이다. 현재 코로나로 ‘대봉쇄(Great Lockdown)’가 세 번째 전지구급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은행들의 이익단체인 FRB의장 앨런 그린스펀와 신용평가사 묵인 하에 월가 투자은행, 연방주택금융공사 등의 도덕적 해이가 불러온 세계적인 금융위기였다.


캡처3.PNG 빈민에게 빵을 나눠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놀란은 당연히 이 역사적 순간을 놓칠 리 만무했다. 그는 ‘혁명’ 개념을 도입해서 브루스 웨인의 근원적인 고민을 고담 시(미국) 전체의 것으로 확장시킨다. 인터뷰에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와 프리츠 랑의 SF영화 <메트로폴리스>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개별 범죄에 대응하는 개인의 도덕률을 넘어 비리와 부패로 취약해진 시스템까지 손볼 속셈이다. 1편에서 레이첼은 범죄자들이 가난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3편에 웨인 엔터프라이즈가 재정난으로 고아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나온다. 물론 이 대목에서 고아원 출신의 존 블레이크를 등장시키는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놀란은 경제에 대한 무관심을 노출한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대로, 브루스 웨인이 주가조작으로 사유재산을 빼앗기는 일은 현실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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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 풋볼 경기장에서 외친 ‘시민 혁명’의 실체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베인은 무능한 경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시민에게 되돌려준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무정부 상태인 5개월 여 동안 약탈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담 시민들, 억압된 민중들은 과연 무엇을 바꾸고 싶어서 베인을 추종한 건지 의문스럽다. 그 외에도 5개월 동안 지하에 감금된 3천여 명의 경찰은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누가 식량을 조달해줄까? 중성자탄이 터지기 직전까지 왜 탈출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걸까? 베인은 왜 경찰과 배트맨을 살려둔 이유가 뭘까?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남겨둔 채 영화는 진행된다.


놀란을 변호하자면, 4시간짜리 이야기를 170분으로 압축하느라 개연성을 일정 부분 포기했다. 무려 1시간 반에 달하는 분량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상당 부분이 아이맥스 카메라의 소음 때문에 장면을 다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혁명일까?' 의심스럽다. 이렇게 된 원인은 뭘까? 혁명으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묘사하지 않아서다. 이 혁명은 배트맨이 등장할 때까지 도시 기능이 정지해있다. 그리고 돌아온 영웅과 공권력에 의해 손쉽게 제압당한다. 이럴 거면 놀란은 왜 이 영화를 '혁명'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는지가 의문스럽다.


결국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프롤레타리아를 긍정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적인 결론을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프랑스혁명을 다룬 <두 도시 이야기>를 반영해 바스티유 습격을 모티브 삼은 아캄 형무소의 습격과, 파리 코뮌이 절로 연상되는 혁명재판소의 설치는 반(反)자본주의적 저항을 야만적 폭동으로 축소한 다음 고결한 엘리트 계층의 희생만으로 구조적 모순을 해결했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영화는 고담 시의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주지 않은 채, 고담 코뮌은 게토의 이미지가 섞여있고, 베인에게 찬동한 고담 시민들을 단순한 폭도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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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배트맨에게 예수가 인류의 원죄를 대속했던 종교적 해석을 끌어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대문호에게 실례되지만, 1859년에 찰스 디킨스가 파리에 가지 않고 런던에 편안하게 앉아 집필한 <두 도시 이야기>은 당시 혁명을 몸소 체험한 프랑스 인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어렵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설> 같은 처절함이 드러나있지 않다.





3. 본의 아니게 시장 만능론자들을 옹호하다.


더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혁명에서는 노동계급의 연대도 이데올로기도 대안도 찾을 수 없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자본을 짓밟는 베인의 혁명론을 배트맨의 영웅주의와 대립시키는 놀란의 편견은 프리츠 랑이 <메트로폴리스>와 <M>에서 보여준 엘리트주의적 낙관을 그대로 반복한다.


영화의 결론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회지도층의 의무와 기부문화로 경제공황을 극복하겠다는 모순된 태도다. 이는 지하 감옥을 탈출한 배트맨을 보며 열광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지하 감옥에서 죽어갈 수인들의 처지와 묘하게 닮아있다.


프리츠 랑은 아직 1929년 대공황을 겪지 않았으므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통용되는 경제관을 남아있었던 듯 싶다. <메트로폴리스(1927)>에서 노동에 의해 부르주아들의 항락을 가능하다고 모순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계급 구조를 전복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부르주의 계급 출신인 프레더의 '중재'를 통해 아무런 해결책 없이 그냥 '진압'된다는 결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금융위기를 몸소 체엄하고서도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와 똑같은 결론을 낸다. 부르주아 출신인 브루스 웨인의 '희생'에 의해 구조적 모순은 그대로인 채 혁명은 진압된다. 근본적인 타결책 없이 금융위기를 몰고 온 엘리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 놀란은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하고자 하지만, 그 체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간과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하이에크는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자유지상주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수립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공공선’을 명분으로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크 나이트>에서 ‘공공선’에 대해 긍정했었기에 이 부분은 묘한 괴리감을 낳는다. 그리고 하이에크는 ‘분배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 법치를 파괴한다. 불합리한 규칙이라도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기만 한다면 나쁠 게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생각이다. 놀란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지 간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배트맨 비긴즈>에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을 양극화에서 찾았기에 이 자가당착은 3부작에 균열을 냈다.


여담으로 대기업들이 규제철폐를 외치는 근거로 활용되는 아담 스미스는 사업가들은 모이기만 하면 으레 음모와 단합을 일삼는다는 말이 <국부론>에 곳곳에 써놨다. 그는 <국부론>에 정경유착과 독과점 기업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것은 오늘날 '지대추구이론'이라 부르는 재벌을 규제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4. 과부하에 시달린 완결편, 실(失)이 많은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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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를 보고 있노라면 놀란과 워너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을 벤치마킹했다. 바로 완결 편에서 1편 <배트맨 비긴즈>을 리메이크하는 방식이다. 조지 루카스는 3부작을 마무리하면서 플롯을 2가지로 대폭 줄였다. 그런데 놀란은 캐릭터마다 사연을 부여했고, 개인의 윤리를 시스템의 무능으로 무리하게 확장했다.


그리하여 1편과 2편의 국가주의 담론과 3편의 계급 구조에 대한 담론이 곳곳에서 충돌한다. 이것이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개연성 부족을 불러왔을뿐더러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해 침묵한 근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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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의 민란(?)을 보면 악당과 영웅이 양면의 거울이며, 시스템을 보존하려면 초법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놀란은 고담 시의 무능과 부패에 질린 고담 시민이 찬동한 베인과 고담의 혁명세력을 구 공권력(경찰)들을 다시 불러 모아 소탕한다. 결국 혁명은 반동으로 진압된다.


놀란의 응급처치는 전작들에 비해 너무 허술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레이첼이 지적한 ‘범죄를 생산하는 빈곤의 문제’에 대해 라스 알 굴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은 너무 극단적이었다.


그래서 미란다(마리온 코티아르)는 8년 전 조작된 가짜 영웅의 거짓된 평화에 빠져있는 고담의 기원을 수정하려고 든다. 그래서 하비 덴트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했다.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자세는 좋았다.


하지만 비밀로 감춰뒀던 그녀의 과거가 공개했을 때 웅장했던 영웅 신화의 오페라는 깜짝 쇼로 축소된다. 이 과정에서 베인이 희생당한다. 그녀를 통해 <배트맨 비긴즈>와 연결한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아버지와 똑같이 배트맨의 오른쪽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라스 알 굴이 생일 파티 때 웨인 저택을 불을 지르며 칼을 찌른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다. 나중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르면 그때 불탔던 웨인 저택이 재건되었고, 베인에게 허리가 부러진 배트맨은 라자러스 핏에서 부활했다. 그녀는 다시 날기 위한 추락을 제공해줬다.


이렇듯 그녀가 등장해야 하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백 스트리가 부실했다. 그리고 그녀를 퇴장시키는 방식이 투박했다. 결국 놀란이 영화 한 편에 담기에는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음을 시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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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된 단점들을 감안해봤을 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독립적인 영화로서의 가치보다 3부작을 마무리한 공로를 더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기존 슈퍼히어로 서사를 답습하지 않고 미개척지를 탐험한 야심에 걸맞게 장엄한 결말은 앞서 말한 단점을 상쇄시켜준다. 놀란은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그 열쇠는 '존 블레이크'가 쥐고 있었다.




5. ‘로빈 비긴즈’에 의한 리스크 감소!

극 중 존 블레이크는 브루스 웨인의 '대체 자아(Alter Ego)'처럼 그려진다. 그는 브루스 웨인처럼 양친을 여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죽고, 아버지는 도박빚 때문에 자신이 보고 있는 앞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말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후 입양되었으나, 이 문제 때문에 양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결국 고아원에 맡겨져 거기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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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블레이크가 로빈이 된다는 복선은 크게 3차례 등장한다. 첫째, 존 블레이크는 브루스 웨인을 처음 만났을 때 단번에 배트맨의 정체를 간파한다. 본인이 자신의 분노를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표정을 제어한다. 그가 브루스 웨인을 만나는 날, 브루스 웨인의 표정이 자신과 같은 가짜 표정임을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추리하여 그가 '배트맨'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둘째, 빈털터리가 된 브루스 웨인이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 역시 존 블레이크다. 만날 당시 운전 중이던 블레이크는 브루스 웨인을 조수석에 탑승시킨다. 이것은 원작 코믹스를 패러디한 일종의 팬서비스다. 존 블레이크는 대놓고 브루스 웨인에게 다시 배트맨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브루스 웨인은 당장 의사를 찾아가고 재활을 개시한다.


셋째, 브루스 웨인은 라자러스 핏(지하동굴)을 탈출하고 나서 그림자 동맹과의 결전을 대비한다. 배트맨은 함께 준비하던 존 블레이크를 불러 신분을 노출하지 않도록 가면을 쓰라고 조언한다. 대놓고 슈퍼히어로가 될 것이라는 확인사살에 가까운 노골적인 표현이다.


그럼 존 블레이크는 왜 로빈이 되려고 했을까요? 놀란은 존 블레이크가 배트맨의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를 알 수 있는 장치가 ‘스쿨버스’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은행강도 오프닝에서 스쿨버스로 탈출했고, 하비 덴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폭발하고 나서 도주할 때도 스쿨버스를 애용한다. 이렇듯 <다크 나이트>에서 동심을 상징하는 스쿨버스를 범죄도구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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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으켜 세울 때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존 블레이크는 중성자탄이 폭발하기 전에 고아들과 시민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다리를 건너려 한다. 도시 내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외부 경찰들은 사람이 1명이라도 탈출하면 중성자 폭탄을 터트릴 것이라는 베인의 경고 때문에 다리를 폭파시켜 버린다.


블레이크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다시 태우고 고담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고아원 원장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체념한다. 그러나 영화는 절망을 딛고 이겨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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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의 대치국면에서 공권력에 회의를 느낀 존 블레이크가 경찰복을 벗고,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한편 브루스 웨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저택은 새로운 고아원이 된다. 어김없이 스쿨버스가 등장한다. 문이 열리고 고아들이 브루스 웨인의 저택에 도착한다. 이처럼 스쿨버스의 수미상관을 통해 로빈이 고담의 수호자로 활약할 것이고, 아이들이 새로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존 블레이크가 로빈이 되는 과정은 놀란이 혁명을 반동으로 폄하시켰다는 논란을 중화시켜준다. 영화는 배트맨을 프롤레타리아를 구제하는 착한 부르주아로 한정한다. 고담 시민들의 마지막 보루인 '혁명'을 선동당한 '폭동'으로 정리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해왔던 지배층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런데 노동계급 출신의 영웅이 등장해서 고담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2장과 3장에 언급한 위험'을 감소시켜준다.





6. 3부작 총평 : 히어로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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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영화들은 이를테면 <메멘토>, <다크 나이트>, <프레스티지>, <인셉션>,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에게 가장 큰 시련으로 ‘연인의 부재’로 거론한다. 이런 놀란의 성향을 읽는 힌트는 <007 여왕폐하대작전>이다. 형과 함께 각본을 맡은 조너선 놀란은 “섹스와 죽음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이고 그것들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든다”며 <다크 나이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이 영화로 대신 설명했다.


놀란의 트라우마 치유법은 간단하다. 결말에서 브루스 웨인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의 시점에서 보여줄 때 이 상처가 아물었음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이게 놀란식의 힐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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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3부작은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은 시민으로 사아가고 있는 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연관된 이슈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놀란의 배트맨이 어둡고 사색적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늘날 세련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번뇌'는 영웅들의 필수품이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큰 힘과 큰 책임의 관계를 고민한다. 다만 여타 히어로들이 스토리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예외적 힘을 보유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률을 성찰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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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란은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슈퍼히어로가 폭력을 위탁 독점한 공권력과 빚는 마찰과 군중심리에 끼치는 영향까지 포괄해서 다룬다. 다시 말해서 시대의 근심을 담고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에 ‘다크 나이트 3부작’이 단연 눈에 띄는 이유는 이런 슈퍼히어로 서사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보통의 히어로물은 카를 슈미트가 말한 ‘주권자란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로 요약 가능한 주권자 문제에서 머물고 마는데 반해, <다크 나이트 3부작>은 당장 내일 국회의사당에 배트맨이 출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관한 훌륭한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


브루스 웨인은 평생 스스로를 옥죄던 자아의 감옥으로 끝내 탈옥한다. 주인공이 행복해져서 기쁜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토마스 웨인은 평생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지만, 가난을 이기지 못한 범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겠다고 포부를 밝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너무 크게 일을 벌이고 수습하느라 그 질문에 대해 끝끝내 외면했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감독판'을 원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0.jpg 《다크 나이트 라이즈 (Dark Knight Rises, 2012)》 후기·리뷰 미국인의 고통을 극복하다.


★★★★ (4.0/5.0)


Good : 흥분과 전율의 엔딩!

Caution : 상류층만의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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