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영화는 가장 오래된 장르 중 하나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제작된다. 코미디 장르는 전통적으로 해피 엔딩을 지향하지만, 블랙 코미디는 예외다. 초기의 무성 영화들부터가 코미디 요소가 다분했다. 슬랩스틱은 음향 없이 시각적 묘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유성여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코미디 영화는 더욱 인기를 얻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사로 위트를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 드라마와 함께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코미디를 하나의 장르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는 주장이 있다. 몸짓과 표정, 대사처리로 유머를 만들어내는 피지컬 코미디를 비롯하여 즉흥적인 스탠드업 코미디, 스케치 코미디, 블루 코미디(화장실 유머), 시트콤, 코미디 호러, 부조리 코미디, 모큐멘터리, 희비극, 반전형 코미디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코미디 영화는 다른 영화 장르에 비해 배우의존도가 높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거나 희극 전문 배우들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코미디의 순기능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평한다. 전형성이 과장된 인물들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스스로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고 희극적 유희 속에 비판적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대다수의 희극 배우들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 세계에서 콩트 소재를 관찰한다.
#20 : 일렉션 (Election·1999) 알렉산더 페인
〈일렉션〉은 하이틴 영화의 탈을 쓴 실랄한 정치풍자다. 정치적 이상주의가 어떻게 타락하는지 낱낱이 공개한다. 정치가에 대한 냉소가 가득한 코미디는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유머와 위트가 정곡을 날카롭게 찌른다.
#19 : 피와 아이스크림 3부작 (Cornetto Trilogy·2004-13) 에드가 라이트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나는 날〉은 흔히 ‘코르네토 트릴로지’로 묶인다. 3부작의 공통점은 펍이 반드시 나오고, 아이스크림 콘(코르네토)를 먹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에드가 라이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영화나 특정 장르를 패러디하는 방식을 영화적 동력으로 삼는다. 또, 그만의 현란한 편집이 가져다주는 리듬에서 액션과 코미디가 태어난다. 놀라운 것은 이 탁월한 코미디가 뻔한 해결을 향해 질주하며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일 때쯤 시침을 뚝 데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점이다. 각 편마다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짧게 살펴보자!
1편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조지 로메로의 좀비물을 패러디하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호러, 코미디, 로맨스, 브로맨스의 요소를 결합해 완벽한 칵테일을 완성한다. 사태가 해결되고 나서 라이트는 총 몇 방 쏜 걸로 좀비화된 현대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2편 〈뜨거운 녀석들〉에서 그가 구사하는 유머 역시 대부분 숏과 숏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발생한다. 갖가지 설정은 버디 캅 코미디 장르의 의표를 찌르고, 시퀀스 안의 진행방식은 관객의 기대를 서너 걸음 앞서간다. 일상에 숨어든 악의 정체는 영국 사회의 보수성과 집단이기주의, 파시즘이었다. 악은 언제나 악하지만, 피해자의 탈을 쓰고 있을 때 제일 악하다.
3편 〈지구가 끝장나는 날〉 역시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남자들의 허세 허풍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술집에서 주인공 일행은 끔찍할 정도로 웃기다가 돌연 외계 침공 영화 습관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SF영화적인 면과 묵시록적인 면 모두에서 그러한 관습을 거부하는 놀라운 파격을 감행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숙해지는 관점의 변화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결국 코르네트 3부작은 ‘어른들의 성장담’으로 최종 판명 난다.
#18 : 기생충 (Parasite·2019) 봉준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감독·극본·국제영화상
〈기생충〉의 결말은 아무도 웃지 않지만, 영화 곳곳에 시종일관 키득거리지 않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와 슬랩스틱이 산재해있다. 희극은 우스꽝스러워보여도 현실에 기반을 둬야 사람들이 웃는다.
80년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에 의해 전 세계에 퍼져나간 신자유주의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대침체(Great Recession, 2007-8)’로 그 한계가 드러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는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금융 불안정성이 크게 증가했다. 이런 시류를 읽은 봉준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탁월한 우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공정을 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는 결코 평등을 원치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보다 더 쉽고 가볍게 ‘양극화’와 ‘계급투쟁(언더 도그마)’을 논한 작품은 극히 드물다.
#17 : 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1941) 프레스턴 스터지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스터지스는 실생활에 용도가 불분명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깊은 회의와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일회용 코미디를 만드는 데 지친 할리우드 감독이 거리로 나가 의미 있는 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현실적인 고난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 도피의 힘에 찬사를 보낸다.
〈설리반의 여행〉은 스크루볼 코미디와 사회 드라마가 혼합되어 있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 아메리칸드림 성공신화, 미국의 사법 체계를 가차 없이 풍자하는 동시에, 전쟁과 기아의 시대에, 코미디가 주는 삶의 위안을 인정하며, 엔터테이먼트와 현실 도피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16 :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1942) 에른스트 루비치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 연극단원이 주인공들이다. 연극배우 부부의 삼각관계와 첩보전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서로에게 동기와 긴장을 제공한다. 정보전과 불륜은 거짓을 꾸며내고 진실을 가려내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오래된 비유를 통해 쌍방의 전쟁을 흥미롭게 엮는다.
#15 : 셜록 2세 (SHERLOCK, JR.·1924) 버스터 키튼, 로스코 어벅클
버스터 키튼의 가장 웃긴 영화는 추측컨대 〈스팀보트 빌 주니어, 1928〉이겠지만, 짜임새 있는 플롯과 놀라운 신체 동작, 탁월한 미학 그리고 현실 대 환상이라는 영원한 이분법에 대한 전위적 탐색을 담고 있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놀라운 묘기와 복잡하게 얽힌 익살은 이 44분짜리 영화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미국사회의 상승지향성은 사회학적 논평이며, 상상 속에서의 성취를 향한 이중성은 심리학적 모티브를 담고 있다. 평범한 주인공은 실제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예술의 본질에 관한 고찰이기도 하다. 루이스 부뉴엘, 우디 앨런, 웨스 크레이븐, 성룡,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많은 영화감독들이 키튼의 저항할 수 없는 익살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14 : 취권 2 (The Legend Of Drunken Master·1994) 유가량
아카데미 공로상
최근 그의 행보는 유감스럽지만, 그는 액션코미디 부분에서 단연 본좌로 군림한다.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찰리 채플린이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이 저절로 연상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성룡 코미디 중에 제일 어둡고, 상처뿐인 승리이기 때문이다.
#13 : 불타는 안장 (BLAZING SADDLES·1974) 멜 브룩스
한때 굉장히 유치한 슬랩스틱과 패러디를 마구 뒤섞은 코미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에어플레인〉, 〈총알탄 사나이〉, 〈못 말리는 람보〉, 〈무서운 영화〉 시리즈 등의 원조는 바로 서부극 장르를 패러디한 〈불타는 안장〉이다. 이미 〈프로듀서, 1967〉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멜 브룩스는 그들의 조물주이자 선생님이었다. 이후 고전 호러영화를 패러디한 〈영 프랑켄슈타인, 1974〉, 히치콕의 세계를 마음대로 재조합한 〈고소공포증, 1977〉, 당대 SF영화에 대한 유쾌하게 응답한 〈스페이스 볼, 1987〉로 일명 브룩스 제국을 건설했다.
멜 브룩스의 비틀기와 뒤집기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고전 장르영화의 공식을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에 꼼꼼하게 삽입한다. 그래서 히트작의 장면들만 패러디하는 데 집중하는 최근 패러디 코미디에 비해 영화적인 텍스트가 풍부하다.
#12 :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THIS IS SPINAL TAP·1984)/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1989) 롭 라이너
〈이것은 스파이널 탭이다!〉는 가상의 영국 밴드가 미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담았다. 우스꽝스러운 바보짓과 음악에 관한 순수한 열정 사이에서 춤을 추며, 롭 라이너는 궁극적으로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가다듬게 만든다. 머지않아 〈웨인즈 월드, 1992〉, 〈블레어 위치, 1999〉, 〈보랏. 2006〉, 〈클로버필드, 2008〉, 〈디스트릭트 9, 2009〉,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2014〉 등의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이 날개짓이 훗날 ‘파운드 푸티지’에 이르기까지 계보를 열었다. 이보다 먼저 모큐멘터리를 시도한 〈카니발 홀로코스트, 1980〉이 있지만, 미국에서 제한적으로 개봉금지가 풀린 것은 1985년 6월 14일이라 〈이것은 스파이널 탭이다!〉보다 늦게 상영됐다.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다. 노라 애프론이 두 번째 남편을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쓴 시나리오에는 현대의 데이트심리를 정확히 포착했다.
#11 : 에어플레인 (AIRPLANE!·1980)/총알탄 사나이 (THE NAKED GUN·1988)/무서운 영화 3 (Scary Moive Ⅲ·2003) 데이비드 주커, 짐 에이브럼즈, 제리 주커
소위 ‘ZAZ 사단’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은 기존 영화를 패러디하는 ‘스풉 무비(Spoof Movie)’를 할리우드에 대 유행시킨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패러디 전략은 간단하다. 다른 영화의 유명한 장면을 뒤틀어서 재현하거나 아이콘적인 캐릭터를 천하에 쓸모없는 멍청이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미 60년대 멜 브룩스가 선구적으로 개척했던 장르였지만, 이들은 좀 더 과격하고 화끈하게 무차별로 간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에어플레인〉은 비행기 재난영화인 〈에어포트〉 시리즈를 패러디했고, 20세기 후반 내내 휘몰아쳤던 패러디 코미디의 원조가 되어 할리우드 코미디의 진로를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ZAZ사단은 〈특급 비밀〉을 만든다. 발 킬머 주연으로 록스타가 스파이로 오해되며 겪는 소동을 로큰롤과 함께 내놓아 기대를 충족했다. 그리고 〈총알탄 사나이〉는 필름 누아르와 경찰 영화를 뒤섞어서 코미디 재료로 썼다. 이 세 작품은 유명한 고전영화들을 패러디의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상당수의 코미디 장면들은 영화의 패러디와는 상관없는 부조리한 상황극에 가까웠다. ZAZ사단이 성공한 데에는 기발한 착상과 황당무계한 익살이 듬뿍 깃든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뒷받침됐음이다.
그러나 〈총알탄 사나이 2〉부터는 웨이언스 형제들의 〈무서운 영화〉 시리즈나 90년대 〈못 말리는 비행사류〉의 ‘최대한 많은 영화의 장면을 마구잡이로 패러디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최신 히트작을 패러디하는 얄팍한 스풉 무비를 양산하며 코미디시장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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