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성군들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럼 한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들 BEST 10을 만나보시죠!
한국사의 유례없는 과학 군주 문종이시다. 세종의 후기 업적은 실제로 세자로서 7년간 대리 청정하며 이룬 것이다.
사서에 따르면, 대놓고 미남에다가, 시호가 문종인데도 국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계유정난에 나오는 나약한 군주는 역사적 왜곡임을 이번 기회로 명심하자!
이 분은 고려 문종과 조선 세종에 비견될 통일신라의 최전성기를 연 성군이다.
나당전쟁 이후 서운해진 당나라와의 외교도 재개하고, 정전 제도를 통해 조세수입도 늘리고, 자영농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교과서에는 거란과의 전쟁과 문벌 귀족의 몰락만 나오지만 그전에 고려의 전성기를 연 임금이 계시니 바로 이분이다. 백성을 어여삐 여겨 억울한 자가 없도록 신중한 재판을 신신당부했다.
넷째 아들인 의천을 후원하면서도 유학과 불교의 공존을 모색하며 낭비를 줄이고, 중앙집권과 조세체계를 완성시켰다. 요를 달래가면서, 송과 84년 만에 재수 교하는 외교마저 예술이다.
여말선초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500년 기틀을 확실히 잡았다. 사병 혁파하고, 외척을 누르고, 공신들을 척살했다. 아마도 과거에 급제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신하들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봤던 통찰이 통치에 큰 도움이 되었던 듯싶다. 또 왕자 시절에는 당시 불편한 관계였던 명나라로 친히 건너가 주원장과 담판을 짓는 담력을 지녔다.
한마디로 정치 10단인 이 분이 없다면 세종대왕의 치세는 있을 수 없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총 재위 기간의 3분의 2에 가까운 시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20여 년간 기록은 없지만, 이 기간 동안 부자세습과 중앙집권 및 부국강병에 힘쓴 것으로 추측된다.
재위 후반기에 요서 지역, 목지국, 한강유역, 산둥반도, 규슈 등지로 활발한 정복활동을 했다. 기록이 적지만, 근초고왕은 내정의 달인이면서 전쟁도 잘했던 만능형 군주로 추측된다.
왕권강화의 아이콘, 조선 이방원과 고려 왕소(광종)의 원조는 바로 통일신라에 이미 계셨다.
통일 전쟁기의 전쟁영웅과 공신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장인과 왕비까지도 폐출시켰다.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주어 귀족들의 경제적 토대에 타격을 줬다. 이렇듯 기득권의 특권을 제한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윤택해졌다.
아버지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에 의해 전사하고, 멸망의 위기를 겪게 된다. 중앙집권화와 불교를 통한 내부 안정에 힘쓰며, 쓰러져가던 나라를 재건한다. 즉위 한지 5년 만에 아버지의 원수 백제를 패퇴시킬 만큼 리빌딩에 성공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소수림왕 - 고국양왕 - 광개토대왕 - 장수왕 - 문자명왕 - 안장왕까지 6대 160년간의 고구려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사생아'라는 최악의 정통성을 가졌고, '여요 전쟁'이라는 국난 와중에도 불구하고 고려 전성기를 열었다.
강감찬이 건의한 몽진을 거부하고, 도성에서 진두지휘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경제면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잘 대처했고, 지방제도를 완성시키고, 세 아들 모두 성군이 된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인물을 왜 드라마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왕조시대의 군주로는 세종과 함께 유이하게 "대왕"으로 불리며 추앙받고 있다.
할아버지 때에 멸망할뻔한 나라를 다시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대군주이다. 비려, 숙신, 백제, 동 부여, 후연, 왜 등과 싸워 정복한 영토가 다른 정복군주(진흥왕, 근초고왕)와 달리 아들 장수왕과 손자 문자명왕, 증손자 안장왕 까지 1세기 이상 유지했다.
단순한 영토확장이 아니라 통치가 되는 실효지배가 이뤄졌다는 게 이 분의 위대함이다.
초기의 업적 몇 개는 아버지 태종의 기획이었고, 후기의 업적은 전부 아들 문종이 주도한 것이다.
그걸 다 빼더라도, 아니 그냥 훈민정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대왕'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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