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hero Movies
1910년대부터 슈퍼히어로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1978년에 리처드 도너 감독,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이 개봉하면서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1989년에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연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면서 주목 받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이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코믹스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 만화적인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리얼리즘을 살려냈다.
2008년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영화 제작에 나서면서 거대한 공유세계관을 진행하면서 파란을 일으킨다. 2010년대에 MCU, DCEU(현재 DCU)와 엑스맨 유니버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 스파이더버스 등이 영화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서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피로감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인 쇠퇴의 기조에 접어들었다.
모든 걸 시작한 영화다. '아이언 맨'은 슈퍼히어로 장르뿐 아니라 영화 산업 전체를 변화시켰다. 그 기원부터 브루스 웨인 같은 억만장자에다 나르시시즘과 바람둥이를 덧붙여 만든 이 캐릭터가 마블의 간판으로 활동하리라고는 당시의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인지도 낮은 마이너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원시원한 전개가 일품이다. “I Am Iron Man"으로 대표되는 클리셰에 충실하다가도 결정적일 때 클리셰를 비트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마약중독에 빠졌던 로다주에게 재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한때 부도 위기에 몰렸던 마블이 영화 제작으로 한숨 돌리게 된다. 2009년 디즈니에 인수 합병되어 거대한 자본력과 압도적인 IP로 박스오피스를 지배하게 된다.
역대급 팬 무비, 40억 인구가 증발된 ‘블립’ 사태로 지구인들이 짊어져야 할 재건의 시간과 히어로들이 겪어야 할 내면의 고통을 함께 다룬다. 그러면서도 〈백 투 더 퓨처〉의 장르적 특징을 가져와 지난 11년간의 역사도 함께 추억하게 만든다.
DC코믹스(Detective Comics)의 회사명 자체가 ‘탐정 만화’다. 1939년에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탐정’이었다. 그는 경찰의 수사를 돕고, 범죄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거듭된 실패로부터 영웅다운 마음가짐을 깨닫게 된다.
마블 팬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게 MCU가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어벤저스〉 때부터다. 〈아이언맨 1〉은 기분 좋은 출발을 했을 뿐, MCU의 전략적 목표는 언제나 "AVENGERS ASSAMBLE!"이었다.
'공유 세계관'과 '팀 업 무비' 전략을 다른 스튜디오도 기획했지만, 아무도 MCU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출발점이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국내외적으로 마블 스튜디오는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게 된다. MCU의 장점인 각기 다른 종류의 장르적 문법을 히어로물에 이식하는 제작방식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인피니티 사가‘의 분기점은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분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부 갈등을 통해 어벤저스의 역할과 그들이 가진 딜레마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되새기게 한다. 존 윅 제작진에 일임한 액션 장면이 박진감 넘친다. 특히 공항 전투 시퀀스는 장관이다. 또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먼)와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짧게 등장하는데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촉박한 제작 기간, 저예산으로 인한 어설픈 CG가 아쉽다. 그러나 매튜 본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복고적이고 캠피한 매력으로 시리즈를 일신한다. 그러면서도 블록버스터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배트맨 비긴즈〉로 어둠의 기사를 기사회생시킨 크리스토퍼 놀란의 솜씨와도 비견할 법하다.
〈언브레이커블〉의 가장 큰 의의는 ‘장르 안에서 장르를 분석한 첫 번째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점이다.
메타인지를 활용해 히어로물의 3막 구성을 '히어로의 탄생·슈퍼파워의 각성·궁극적인 빌런과의 사투'를 그대로 따라간다. 특별한 점은 캐릭터들이 일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에게 접목시켜도 매우 자연스러울 만큼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이 캐릭터를 통해 느끼는 전율과 감독의 폭이 더 크고 깊은 것이다. 슈퍼 빌런인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L 잭슨)'는 슈퍼히어로를 찾아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한편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될 수 있었으나 (아내를 위해) 평범한 가장이 되어 아들을 보살피는 대조적인 행보를 걷는다.
시간여행을 통해서 기존 3부작과 리부트 3부작 간의 설정 오류를 바로잡고, 엑스맨 시리즈의 세계관에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캐릭터들을 존중하고, 새 캐릭터들과의 균형을 추구했다. 완성도 높은 빌런과 정갈한 서사로 이전 시리즈와의 연속성을 복원한다. 이 아이디어는 멀티버스로 구체화된다.
〈다크 나이트〉의 안티테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둡고 현실적인 히어로물의 대세를 따르지 않아 새로운 법칙을 세웠다. 올드팝 사운드트랙과 레트로 액션을 블록버스터 시장에 유행시켰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히어로 시장(〈수어사이드 스쿼드〉, 〈데드풀〉, 〈토르: 라그나로크〉)에 전파했다.
앞으로 진행될 〈시크릿 워즈〉가 우주를 주요 무대로 상정한다면, 〈가오갤〉은 〈멀티버스 사가〉의 나침반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측면은 〈인피니티 워〉 , 〈캡틴 마블〉 , 〈엔드게임〉 , 〈이터널스〉, 〈토르 러브 앤 썬더〉, 〈더 마블스〉로 하나의 추세를 형성했다. 덧붙여 루소 형제에 따르면 케빈 파이기의 진짜 애정이 가 있는 쪽은 〈스타워즈〉였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나를 가장 인상깊게 한 슈퍼 히어로 영화는 너무 진지하게 흘러가지 않았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다."고 칭찬했고, 이동진은 '요즘의 마블은 흡사 십수년 전의 픽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한줄평으로 MCU 전체를 통틀어 최애작이라고 말했다. 또,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이야기 흐름은 다 짐작 가는데도 인물들의 드라마로 신선한 전개를 가능케 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를 능가하는 예시로 적합하다. 이 영화는 마일즈 모랄레스(Miles Morales)를 중심으로 코믹스, TVA, 게임, 영화에서 소개되었던 모든 스파이더맨의 역사를 집대성한다. 이 박물관에는 뛰어난 액션, 웅장한 스타일, 풍부한 유머, 감정적 무게가 전부 전시되어있다. 마일즈는 막중한 책임감과 이중신분에 적응하는 고난을 헤처나간다. 각 프레임마다 디테일이 가득하며, 만화책을 훑어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대형 스크린으로 가져온 만화책의 진정한 표현이다.
영웅과 악당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맞선다. 〈X2〉는 히어로 장르의 이분법을 초월한 문제작이자 분기점이다. 정치적으로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이후의 히어로물 〈시빌 워〉, 〈배트맨 v 슈퍼맨〉처럼 정치 역학에 따라 입장의 차이를 정리하거나 〈블랙 팬서〉 ,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 같이 정치·철학적 견해 차이로 대립한 후손을 남겼다.
한 배우의 17년간의 캐릭터 연기를 떠나보내며 슈퍼히어로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고별식을 거행한다.
〈로건〉은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 시리즈와 ‘네오 웨스턴’의 방법론을 빌려 멀티 유니버스의 부분이 아닌 장중한 마침표를 찍었다. 히어로 울버린 아닌, 로건이라는 한 사람의 쇠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MCU와 달리) 단독 영화이지만 장대한 세계관을 정리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슈퍼히어로 최초의 예술영화, 할리우드에서 감독 자신의 주관을 지키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배트맨 2>는 인간의 양면성과 주류에서 소외된 캐릭터에 집착하는 버튼의 주제 의식과 취향이 극단적으로 폭발시켰다. 배트맨, 캣우먼, 펭귄 모두 이중 신분 때문에 정신이 파괴되는 과정은 그리스 비극처럼 처절하다.
주인공이 거듭 실패하는 광경은 분명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할 게 뻔하다. 최강 빌런 ‘타노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거악(惡)에 정의가 패배하는 마블판 〈제국의 역습〉은 실로 용감한 영화다.
아카데미 특별업적상
히어로 영화의 바이블,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현재까지 지속되는 장르의 기준을 세웠다. 무명배우를 히어로로 캐스팅하되 유명 배우를 빌런으로 기용하라는 철칙은 이제 클리셰가 됐다.
리처드 도너는 코믹스를 필름에 담으면서 '고뇌하는 영웅'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이것은 판타지가 아니다(This Is No Fantasy)"라는 (조 엘의) 첫 대사부터 감독의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피터 파커가 히어로로의 책무와 일상의 문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도덕적 딜레마는 이후 히어로 물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다. 전차를 멈추고 힘을 모두 소진해 떨어지려는 스파이더맨을 시민들이 구해준 뒤 "그냥 평범한... 청년이에요. 내 아들보다도 어린데 (He's... Just A Kid. No Older Than My Son.)"라는 한 시민의 증언은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대사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앞으로 히어로 영화계는 ‘다중우주(멀티버스)’가 대세가 될 예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뉴 유니버스〉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음향효과상
소시민 히어로물의 바이블. 가장 위대한 슈퍼히어로 앙상블은 마블, DC가 아닌 픽사가 해냈다. 〈판타스틱 4〉 가 진정 그려야 했던 '가족주의'가 여기에 있고, 정부가 법률로 히어로를 제재한 대목은 〈시빌 워〉 , 〈배트맨 v 슈퍼맨〉 같은 주제를 앞서 탐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음향편집상
〈다크 나이트〉 는 전체 장르를 새롭게 정의한 비결은 무엇일까? 코믹스 히어로와 슈퍼빌런 모두를 마이클 만의 범죄 누아르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놀란은 지극히 고전적이고 교과서적인 영화제작을 보여준다.
말은 쉽지만 그걸 해낼 수 있는 필름메이커는 몇 없다. 슈퍼히어로 장르 뿐 아니라 영화사를 통틀어도 잘 만들 영화다. 단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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