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가상의 도시 군천에서 해녀들이 생필품을 밀수하는 범죄 영화다. 정확히는 조직범죄를 다룬 케이퍼 무비다. 70년대 명곡과 (장기하가 담당한) 70년대 풍 신곡이 <가오갤>처럼 영화 전체를 떠받들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예산에 반영시키기 위해 촬영 전부터 선곡을 끝마쳤다고 밝혔다.
밀수 OST
인물들의 범행 동기는 흘러간 노래 가사처럼 지지리 궁상이다. 영화는 밑바닥 인생의 안타까운 사연을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 보면서 킥킥거리다가도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음악감독 장기하가 만든 70년대풍 신곡이 영상과 감각적으로 매칭되어있다. 70년대 가요가 갖는 구슬픈 가락과 애달픈 정서보다 영화를 위해 만든 신곡이 아무래도 영화의 맥락에 더 자연스럽다는 뜻이지 명곡들도 좋았다. 명곡은 괜히 명곡이 아니지 않는가! 음악 외에 프로덕션 디자인, 소품, 세트, 촬영까지 그 시대를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싸하다.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와 <다찌마와 리>가 떠올랐다. 여성 주도의 케이퍼 영화와 복고풍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류승완이 보는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이다.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약육강식 사회구조 아래 《밀수》의 인물들은 살아남고자 도망치고, 속이고, 훔치고, 때린다. 조춘자(김혜수), 엄진숙(염정아), 권 상사(조인성), 장도리(박정민), 이장춘(김종수), 고옥분(고민시)과 양금네(박준면), 돼지엄마(김재화), 똑순이(박경혜), 억척이(주보비) 등이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거나 기만하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먹이사슬을 이룬다.
류승완 감독답게 액션 연출은 좋았다. 특히 수중 액션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수직 움직임을 구현한 액션은 확실히 해녀라는 직업과 잘 어울린다. 액션 설계나 구성은 괜찮으나 예산상의 문제인지 기술적 한계인지 수중 촬영이 약간씩 미흡한 구석을 노출한다. 그럼에도 국내 액션에서 드물게 수평적 구도에 수직적 깊이를 더한 때문에 확실히 이 부분은 장점이라 봐야 할 것 같다.
춘자는 영화 끝까지 능동태로 외치고, 진숙은 계속 피드백만 하는 수동태에 머무른다.
《밀수》는 마치 모든 에피소드와 등장인물을 엮을 만한 가락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녀들의 밀수라는 컨셉을 밀어붙이느라 이야기얼개가 허술해지고, 캐릭터에게 역할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과부하에 걸리게 되고, 시너지 효과가 감쇄된 것이다. 예를 들면, 깡패들이 잠수장비가 있는데, 굳이 해녀에게 밀수품을 건져오게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보통 케이퍼 장르물은 각기 다른 목적에서 이전투구가 벌어지기 마련인데, 밀수의 복잡한 계획과 실행을 추측하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 한참 기다려서 겨우 떡밥을 풀리나 싶었는데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지 못하니까 짜게 식는다. 초반부터 쌓아온 빌드업에 비해 쾌감이 적은 것도, 같은 이치다.
정리하자면 각본의 멜로디가 약하다고 할까? '밀수'라는 소재를 돋보일 만한 중심 사건이 부재하다. 더욱이 '사건의 전말'을 후반에 배치한 구성 때문에 약점을 두드러진다. 돈의 흐름을 따라 에피소드를 배열했을 뿐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지 못한다. 문제의 황금만 봐도 그렇다. 보통의 케이퍼 무비라면 황금이 모든 사건의 진원지이지만, 《밀수》는 장르의 논리가 이끄는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편집과 음악 배치가 다소 두서없이 엉켜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초반부터 폭주하듯 끝까지 강하게 휘몰아치니까 영화 보는 내내 지치게 만든다. 특히 액션 장면에 대한 매혹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균형을 잃을 때 잔혹 묘사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편곡이 안일했다. 합주를 함에 있어 모든 악기에 힘을 줄 수 없는 법이다. 감독이 애정하는 모든 요소를 보듬는 바람에 정작 중심 사건이 옅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70년대풍을 재현한다고 너무 힘을 줘서 가끔 레트로 그 이상을 오버한 것 같은 촌스러움을 선사한다. 한강의 기적과 거리가 먼 해녀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동기를 납득시키기 위해 음악 외에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도 부족하다.
그런 단점이 연기 앙상블에서 노출된다. 어떤 캐릭터는 확 튀는 반면에 어떤 배우는 가라앉은 것 같다. 특히 김혜수에게 힘을 팍팍 실어줬지만, 춘자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는 그녀의 전사(백스토리)가 공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 진숙이 춘자를 포섭하는지 납득시키지 못한 채 밀수단이 꾸려지니 이들의 행보에 대해 시큰둥하게 지켜보게 한다. 그러다보니 제 아무리 여성 영화라고는 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박정민이라는 모순에 직면한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애정하지 않는다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조금 더 완급조절에 신경 썼다면 좋았을 것 같다.
★★☆ (2.5/5.0)
Good : 구수한 음악과 미술, 수중액션
Caution : 맵핵을 다 켜놓은 밀수 범행
●류승완 감독은 "오래전 제가 예전에 읽었던 논픽션 단편집에 부산에서 여성들이 밀수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외유내강) 부사장이 '시동'을 만들 때 군산에 갔다가 1960~70년대 서해안 지역 밀수 사건을 찾아내면서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생필품을 밀수했는데 그 환경이 흥미로웠다"라고 "제가 이 영화를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수중 액션을 구현할 수 있어서였다. “고 밝혔다.
■김혜수와 염정아는 원래 수영조차 하지 못했고, 물에 들어가면 공황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밀수' 촬영을 앞두고 3개월간 수중 훈련을 거친 끝에 깊이 6m에 달하는 수조에서 연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아티스틱 수영 국가대표 출신 김희진 코치가 이들의 물속 동작을 더 유려하게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