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il Does Not Exist·202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은 도시의 글램핑 개발자들이 시골 마을로 찾아와 설명회를 열게 되는 내용이다. 자연개발과 환경보호 테마를 떠올리겠지만, 영화는 사회 논평에 관심이 없다. 하마구치는 언제나 그러하듯 '인류세'라는 단층을 파헤친다.
영화는 안톤 체호프의 특징이 읽힌다. 셰익스피어가 뚜렷한 사건과 갈등을 가지고 노는 작가라면 체호프는 도대체 사건이 무엇이고,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체호프 작품에는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은 캐릭터 간의 사소한 갈등이 아닌 현실과 이상의 괴리 혹은 인간존재의 부조리함에 대한 것이다. 영화 역시 그러한 체호프식 갈등이 전반에 흐르고 있다.
사업 설명회에서 가장 쟁점인 사항은 산 중턱에 설치될 예정인 정화조다. 아무리 정화조가 있다 해도 결국엔 마을의 물을 오염시킬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회가 끝날 무렵, 마을 회장이 내뱉는 대사에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도시인들이 내세운 자본의 논리가 상류, 주민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염려가 하류라는 것이다. 윗물은 중력에 의해 아랫물로 흘러들 것이고, 결국 자본과 도시의 논리가 주민들의 생각을 오염시킬 것이다.
물 부족, 지구 온난화,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인들이 숲 속 힐링을 즐기는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숲을 거니는 유장한 트래킹숏으로 체호프처럼 언어가 다가 아니라 숨겨진 이면의 의미들이 다양하게 내포되어 있다. 영화 또한 글램핑 개발과 자연보호, 인간과 사슴, 주민과 도시인으로 이질적인 두 세계가 대척점으로 충돌시킨다. 그리고 이시바시 에이코의 음악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 든다.
영화는 이질적인 두 요소가 충돌하는 불협화음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여보려는 것이다. 체호프식 대화법은, 침묵의 사용이 있고, 인물 간의 대화에 있어서 어긋나는 경우도 많으며, 독백을 활용한다. 이런 방식의 대화체를 통해 작가는 가치관의 차이, 상대와의 이해 불가능성이나 인간관계의 단절, 고독 등을 드러낸다. 이것을 영화적으로 활용한다. 즉 하마구치는 이미지 중심의 운문, 대화 중심의 산문을 교차한다. 촬영감독 기타가와 요시오와 음악감독 이시바시 에이코에게 의한 영상과 음악을 통해 나른하다가도 바짝 조인다.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만큼 대사를 배제하며 침묵의 효과를 이미지화한다. 때때로 호러영화처럼 등골이 서늘해진다. 서로 섞이지 않는 두 요소의 불협화음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그 불안은 주민조차 자연의 입장에서는 타자(외부인)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 (4.5/5.0)
Good : 체호프식 생태학
Caution : 마지막 한방까지의 기다림
■차기작 계획이 없던 상태에서, 이시바시 에이코가 공연에 쓸법한 영상을 제작해 달라는 부탁에 기획을 시작했다가, 장편 영화로 확장된 영화라고 한다. 원래 계획했던 공연용 영상은 〈GIFT〉라는 제목으로 따로 공개할 예정이라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영상을 의뢰받고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가야 했다”며 “이시바시의 음악 스튜디오 주변을 조사하다 이번 영화에 나오는 글램핑 야영장 설명회와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개인적인 생활공간에 도시의 논리가 개입되는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물을 둘러싼 개발업자와 마을 주민의 충돌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신들의 깊은 욕망〉을 연상시키고, 시선의 주인이 없는 자동차 숏은 장 뤽 고다르의 〈주말〉을 떠올랐다.
●제80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로써 하마구치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로써 하마구치 감독은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앞서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드라이브 마이카〉로는 칸영화제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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