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없다. 이제 음악을 소비하는 시장이 없고, 아이돌은 외국 음악 부르고, 트로트 아니면 발라드도 없다” - 작곡가 주영훈
올해 차트는 고인물이었다. 빌보드 연말차트 TOP 10에 단 두 곡만이 올해 발매된 신곡이고 나머진 작년에 인기를 얻은 노래가 장기집권 (골든은 25위)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과거 음악팬들이 직접 곡을 골라 음악 재생목록(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이제 AI나 타인이 추천한 목록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음악 소비가 바뀌었다. 즉 음악 소비 방식이 ‘탐색’에서 ‘수용’으로 옮겨가면서, 소비자가 취향을 표현하는 주체에서 플랫폼이 제안하는 음악을 받아들이는 청중으로 변화했다.
플랫폼 잠금(lock-in) 효과를 강화하면서 알고리즘에 의해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개인의 음악 감상 시간은 절대적으로 늘었지만, 과거처럼 음악을 집중하며 소비하는 청취자들의 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음악이 우선시 되면서 곡의 길이가 짧아지고, 후렴구는 앞당겨지는 등 팝 음악의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시장조사업체 MIDiA에 따르면, 알고리즘에 의존할수록 새로운 음악을 발견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은 히트곡을 가장 적게 생산된 연도로 남을 전망이다.
#25 : 케이팝 데몬 헌터스 Soundtrack
《케데헌》의 의의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K팝으로 전 세계 아이들에게 K팝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K팝은 음악시장에서 2-3%를 차지하는 소수의 마니악한 장르다. 《케데헌》을 통해 마이너한 K팝을 널리 알리고 친숙하게 호감도를 높였다는 이유로 올해의 앨범에 꼽아 봤다. ‘아기상어’와 '뽀로로'에 이어 세계 어린이·영유아층마저 한류에 포섭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국격은 우상향할 토대를 마련했다.
더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들이 참여해서 기존 K팝 공식을 능수능란하게 재활용했다. ‘How it’s done’과 ‘Takedown’는 블랙 핑크처럼 해달라는 넷플릭스의 요청에 만든 외주 가공품이다. ‘Soda Pop’와 ‘Your Idol’는 SMP로 헌트릭스의 YG스러움과 대비를 이루며, 가사는 팬덤 문화에 대한 메타 유머로 구성했다.
또 ‘Free’와 ‘What It Sounds Like’는 저명한 뮤지컬 음악가인 이안 에이센드래스가 참가해서 미국적인 정서를 잃지 않게 균형을 맞췄다. 1950년대 김시스터즈, 1990년대 에스이에스(S.E.S.)까지 걸그룹의 계보를 ‘훈문’과 연계시키며 1970년대 죠커스의 포크송 ‘오솔길’을 수록한 점도 우리 음악을 존중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24 : 클로즈 유어 아이즈(CLOSE YOUR EYES), EP Eternalt
하이브를 필두로 기획사들은 빌보드를 목표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숫자 0의 개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초점을 맞춘 음반은 점점 생산량을 줄어든다. 그런데 《Eternalt》는 우리 시장을 노린 기획 상품이라 금세 눈에 띄었다.
우리말 맛을 신경 쓴 수록곡들 ‘내 안의 모든 시와 소설은’, ‘빗속에서 춤추는 법’, ‘Stay 4 good’, ‘사과가 하늘로 떨어진 날’을 연달아 듣다 보니까 전통적인 접근법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모두가 군무를 돋보이기 위해 과잉된 리듬을 외치다보니 ‘청량’으로 모아지는 보이그룹 판도 속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듣는 재미’에 집중한다. 무자극, 안락함, 담백함으로 차별화한다.
그렇다. K돌은 원래 눈으로 즐기는 법이지만, 본래 음악은 귀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3 : 엔믹스(NMIXX), Blue Valentine
레드오션화된 아이돌 시장에서 데뷔 이후 가장 힘든 시기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때다. 팬들이 일일이 기억도 못 하는 팀들이 하루에도 몇 팀씩 데뷔하는 마당에 존재감을 확립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믹스팝을 표방한 엔믹스의 그간 디스코그래피에 명확한 설계도가 보이지 않았었다.
EP 〈Fe3O4〉 3부작 만해도 아쉬운 타협이 보였건만 《Blue Valentine》에서 그런 장황함이 없다. ‘Blue Valentine’, ‘Spinnin’ On it’, ‘Phoenix’ ‘Game face’, ‘Crush On You’에서 데뷔 4년 만에 엔믹스표 믹스팝이 온전히 작동한다. 그 원동력은 자신의 성장통을 앨범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보다 절실하게 와닿는다. 비트에도 서사에 맞게 흐름에 따라 배치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셰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청취의 의외성에서 오는 쾌감 정도로 변화의 폭을 줄인 것도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2 : 배철수, Fly Again
거장들의 귀환은 언제나 환영한다. 보아의 25주년 기념작 〈Crazier〉, 브릿 팝 4천왕 중 하나인 펄프의 24년만의 신보 〈More〉이 대표적이다.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을 골랐다. 이제 라디오 방송인이지 더 이상 음악인이라는 소개하지 않았던 배철수가 40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앨범 《Fly Again》를 내놓았다. 2022년 구창모와 송골매 재결합 공연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한다. ‘이어도’, ‘처음부터 사랑했네’, ‘세상만사’, ‘내마음의 꽃 /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그대는 나는’을 쭈욱 듣다보면 활주로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검색된다. 바로 ‘로큰롤’이다. 외부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아도 편곡을 도맡아 자신의 인장을 새겨넣는다. 꾸밈 없는 보컬, 군더더기 없는 편곡, 흔들림 없는 정체성 3박자가 어울리며 자신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21 : 아오바 이치코(青葉市子), Luminescent Creatures
포크 뮤지션 아오바 이치코의 7집 『アダンの風』부터 그녀의 음악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덟 번째 앨범 《Luminescent Creatures》 역시 전작과 동일한 제작진이 참여했다. 편곡가 우메바야시 타로, 사운드 엔지니어 카사이 토시히코와 함께 작업하고 사진작가 고바야시 코다이가 앨범 표지를 맡았다. 앨범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그녀의 음악 세계를 정리하는 기분인 것 같다. 그녀가 구사하는 모든 방법론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탑라인만 보면 머니 코드의 남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고, 클래식 기타와 피아노에서 점점 악기가 늘어나는 커리어 후반의 경향성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 음악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샹송, 재즈, 챔버 팝, 포크의 기본 문법을 채택하고 있다. 공동체주의적인 지향점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할까? 악기 구성을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영화적'이고도 '웅장한 사운드를 내기 위한 섬세한 작업이 이 일본 싱어송라이터를 알아보는 지구인의 숫자를 늘린다. 아마도 자연의 모든 지혜를 들려준다고나 할까? 인공적인 사운드에 오염된 음악팬들의 청각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맑고 청량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20 : 제니(JENNIE), Ruby
우리에게 아이돌 멤버의 솔로 프로젝트는 창작의 자유에 달려있다고 여기기 쉽다. 실제 이 음반은 제니의 의사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Ruby》는 21세기 R&B 계열 음악이 걸어온 사례를 인용했다고 평가될 것이다. 리한나에 대한 제니의 존경심을 애써 외면하기 힘들지만 《Ruby》는 팝바라기인 국내 기획사에서 내놓을 수 있는 진정한 ‘팝’ 앨범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로제와 리사의 솔로작이 지나치게 팝 트렌드에 종속된 반해 《Ruby》는 그나마 중심을 잘 잡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다. 예를 들면, 선덕여왕을 끌고와 선(禪)을 설파하는 ‘Zen’에서 확인된다.
#19 : JADE, THAT'S SHOWBIZ BABY!
오디션 프로그램 ‘X팩터’를 통해 선발된 걸그룹 리틀 믹스의 전 맴버인 제이드는 그녀가 경험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경험한 바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냈다. "IT girl"과 "FUFN (Fuck You For Now)"은 일종의 메타 유머처럼 아이돌 세계에 대한 논문처럼 정독하게 말하고, 세련된 전자음의 "Plastic Box"의 대중에게 사랑을 갈구하는가 하면 "Self Saboteur"와 "Natural At Disaster"에서 인기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잘 반영되어 있다. 디스코와 일렉트로닉을 바탕으로 음악 산업의 착취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펼치면서도 업계를 오랫동안 버텨온 선배 디바들에게 헌사를 표한다.
#17 : 추다혜차지스, 소수민족
추자혜를 위시해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으로 구성된 R&B밴드인 추다혜차지스는 두 번째 앨범〈소수민족〉에서 ‘코리안 펑키(Funky) 샤머니즘 뮤직’이라는 미개척 장르를 더욱 개발한다. 국악 중에 무가(巫歌)라 불리는 무속신앙에 쓰이던 음악을 R&B (Funk), 레게, 덥, 블루스 등 흑인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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