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삶의 목적은?

《Train Dreams·2025》

by TERU

클린트 벤틀리의 《기차의 꿈》은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턴)가 글래디스(펠리시티 존스)와 결혼하여 딸 케이티를 낳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버트의 삶을 통해 20세기 초중반 미국이 변화하는 것을 전달한다.


《기차의 꿈》은 데렌스 멜릭과 켈리 라이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멜릭처럼 초점이 없는 서사와 추상적으로만 성격이 부여된 인물들에 캐릭터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에는 에저튼을 비롯한 배우들의 공로이다. 에저튼은 60년 넘게 육체 노동 속에서 변화하는 삶의 자세를 평범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 잊을 수 없는 초상을 완성한 에저튼은 냉철하면서도 쓸쓸한 로버트 역을 매우 효과적으로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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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벤틀리 감독은 그렉 퀘라드와 함께 데니스 존슨의 2011년 중편 소설을 각색하면서 지난 날의 미국을 되돌아본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아돌포 벨로소의 카메라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3:2 비율로 전통적인 35mm 카메라 사진 필름의 느낌을 되살린다. 즉 스틸 사진 같은 아날로그적 ·문학적·회고적 시각적 감성을 주입한다.


(멜릭적인) 윌 패튼의 내레이션으로 도시화·현대화와 거리가 먼 아이오와의 촌락을 배경으로 향수, 세월, 고독감, 자연주의, 생태주의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굉장히 문학적·회상형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 영화의 카메라 무빙은 움직임에 대한 내적이거나 외적인 동기가 없다. 동기가 없는 무빙이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자연의 물리적 관성, 피사체의 관성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면 되지만 이 영화에서는 물리적 관성을 따르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없다. 주인공을 강조하거나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일상 안의 쓸모없고 흩어진 존재들을 연결한다.


카메라 무빙을 보여주는 첫 번째 장면은 동료인 중국인 남성(알프레드 싱)의 살인을 목격한 대목이다. 서부 개척 당시 철도를 까는데 동원된 쿨리(중국인 노동자)의 희생을 은유한 것 같고, 주인공을 1900년대 초의 미국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유령처럼 그의 생애 동안 그를 괴롭히는 것이 어느 정도는 정상 참작할 여지가 있다.


정복이라는 이름의 강탈, 광범위한 조직적인 학살, 인종차별로 부강하게 된 미국을 이 시퀀스로 형상화한다. 벌목하면서 생기는 사고들은 항상 그의 주위를 맴도는 업보처럼 따라붙는다. 폭파 전문가 아른 피플스(윌리엄 H. 메이시)와의 대화에서 나무를 베는 것은 생명을 해치는 것이고 그것이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불교철학을 은연중에 노출시킨다. 이것 또한 멜릭적이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라이카트의 연출을 그대로 따왔다.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두 사람이 공통의 시선으로 타인의 행위나 타자를 돌볼 때는 한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이 함께 있다. 또는 한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다른 한 사람으로 카메라가 함께 이동하면서 떨어진 두 사람을 연결하고 한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을 같이 배치한다.


주인공의 가정 생활 장면은 멜릭적이다. 너무 황홀하게 찍혀서 문명을 포기하고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질 정도다. 아돌포 벨로소의 카메라는 피사체를 안아주는 느낌이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싶고(실제 별들을 바라보는 샷이 있다)에서 자연의 느낌을 전한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주제가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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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잔인한 운명이 개입한다. 직장에서는 언제나 사고의 위험이 있고, 가족에게도 불행이 엄습한다. 로버트는 순리대로 살 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딱 한 번 중국인 유령에게 화풀이한 적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비극에서 다시 딛고 일어서는 데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디언 가게 주인이 주인공을 보살필 때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백인을 돕는 인디언이라, 주인공이 백인들과 협력하여 쿨리를 다리 밑으로 던진 것과는 역전이다. 이렇듯 역사의 비극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배치하면 이런 극적인 효과를 얻는다.


그게 바로 핵심이다. 《기차의 꿈》은 고통에 직면한 인간이 예상치 못한 고귀함을 발견하도록 지도한다. 신파로 쉽게 갈 수 있었지만, 《기차의 꿈》은 원작자의 교묘한 문체를 (레이카트처럼) 육체적 노동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항상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한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누구나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 있고, 그 삶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럼 그저 살아가는 삶에 가치가 있을까? 만약 내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유산도 후손도, 흔적도 남길 수 없다면 말이다. N포세대인 입장에서 소리 소문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물질주의(부)를 쫓고, 우리의 고독을 잊기 위해 가족을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아등바등 살면 삶의 의미를 알게 될까?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랑하는 걸 설령 잃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죽음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죽은 뒤에 나무에 걸어둔 신발에 꽃이 피는 자연의 이미지에서 생명에 내재된 무한한 순환(재생)을 강조한다. 죽음과 파괴에서 생명과 창조가 일어나고 삶은 또 다른 죽음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태어나도록 한다.


★★★★☆ (4.5/5.0)


Good :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Caution :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다.


●기차의 의미는 산업화다. 미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피, 땀, 눈물로 세운 기찻길은 새로 새운 도로에 밀린다는 대사를 통해 과거에 아득바득하던 미국의 인디언 학살, 소수인종 차별이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자조적인 비판이 제목에 깃들어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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