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넘어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위하여

한정현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읽고

by 다른






이 책 속에는, 당신이 몰랐던 역사가 있다. 교과서가 기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부정당한 사랑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시대의 풍경화를 다시 그린다. 그러면, 2020년 현재 우리 곁에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숨소리로만 겨우 존재하고 있던 어떤 이들의 이름이 불리어진다. 사랑이, 긴 잠에서 깨어난다.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라고까지는 못해도,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펼친다면 얼마간 당황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라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어쩐지 가볍고도 경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형광 주황빛의 책 표지 때문이다. 그렇게 방향이 다른 기대감을 가진 채로 첫 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하면, 우선은 스마트폰을 조금 자주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소설 곳곳에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이거 무슨 말인지 나만 모르나, 싶다면 안심하라. 당신이 그 시대에 관해 배우던 때, 모종의 이유로 당신에게 절대 알려지지 않았던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랐던 그 단어를 꼭 꼼꼼히 검색하고 넘어가 달라. 작가는 일부러 책 속에 주석을 달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60년대, 80년대, 혹은 90년대의 대한민국을 말하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그 풍경 속에 여성은 몇 명인가? 노인은? 성소수자는? 그 시대의 역사, 그 시대의 전쟁, 그 시대의 산업, 그 시대의 혁명 말고, 그 시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단편집’이지만 ‘연작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각 작품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 책은,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느 정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과 소설로서의 형식적 실험들, 다양하게 반복 혹은 변주되며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수고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담한 시대 속 쉽게 쓰이는 시를 통탄했던 어느 유명한 시인처럼, 쉽게 사랑하는 일, 쉽게 이해하는 일, 쉽게 헤아리는 일을 조금은 경계하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다른 그 어떤 로맨스 소설들보다 훨씬 진한 흔적이 그의 안에 남을 것이다.

모든 소설 쓰기가 곧 어떤 이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이겠지만,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실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어떻게 이런, 은인 같은 작가가, 구원 같은 소설을 들고 우리에게 나타나주었을까.






“주희, 제주도 해녀들은 숨비 소리라는 걸 낸다....... 4.3이 지난 후부터야.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래.”
주희가 퍼뜩 거울에 비친 자신과 이 씨를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여성들에겐 숨소리뿐인가 봐. 말 대신 숨소리를 내.” (소녀 연예인 이보나, 65)


응, 할머니가 그러는데 고모는 자기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었는데 반대로 가던 사람들이 멋대로 뻗은 발에 차인 거래. 원래 사람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갈 수 있기 때문에 백번 양보해서 그 사람들에게 왜 반대편에서 왔냐고 뭐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거래. 근데 사람이 부딪히면 원래 미안합니다 이렇게 사과하는 게 중요한데 그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아주 아주 못 배운 놈들이래. (106)


한서가 말하려던 거요. 사랑인가 혁명인가, 가 아니고.
나는 그때까지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도 허공에 멈춰 선 그의 손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사랑과 혁명이었을 수도 있을 텐데.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제야 그의 손을 감싸듯 맞잡았다. 내 손을 맞잡으며 그가 조금은 힘을 주어 말했다.
한서는 한 사람을 사랑해 보았으니까. 그래서 모두를 위한 혁명도 말할 수 있던 것 같아요. (112)


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에 갈 수 있는 강한 남성과 국가를 위해 순종하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서양문물에 빠져 소비와 타락을 일삼는 모던 걸이라 지칭되며 손가락질당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쉽게 조립되는 기계 부품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가 긴 생머리의 여성상을 요구할 땐 짧게 머리를 잘랐고 발목을 덮는 길이의 치마를 원할 땐 짧은 바지를 입었다. 원하는 남성에겐 언제든 사랑을 고백했다. 타락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던 걸은 원래 자신의 선택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 그러므로 관광하는 모던 걸 또한 어디든 갈 수 있다.
“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이제 오키나와로, 나하로 갈게.”
그러므로 이 글은 근대 제국의 경영 방식이었던 과학기술의 발전과 모던 걸의 탄생을 방법론으로 하여 전후 한국의 과학, 관광이 독재정권의 국가 경영의 방식이었음을 고찰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 재일, 노동자, 성소수자, 아동 등의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책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이 너로 향하는 과학 하는 마음 그 자체이므로. (과학 하는 마음, 205)


“이곳에서는 자꾸 화가 나. 그런데 이게 내가 정말 화를 내는 걸까? 그러면 나는 왜 당연한 것에 자꾸 화를 내는 사람이어야만 할까. 그렇게 자꾸 화를 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나까 나 자신이 너무 거칠어 보이고 또 초라해 보이고 너무 많이 한심해.”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