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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Oct 20. 2022

004.프랑스에 없어서 내가 통탄해 마지않는 건

2021년 5월 파리 시간으로 25일 23시 28분




  프랑스에 가면 구할 수 없거나, 구할 수는 있는데 아주 비싸거나, 한국만큼 품질이 좋지 않으니 꼭 한국에서 준비해가면 좋다고 알려져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눈썹칼. 한국에서는 대체로 화장할 때 눈썹칼로 눈썹을 다듬는 단계를 많이 거치기 때문에 매일 아침 화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가히 생필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보통 눈썹을 칼로 잘 다듬지 않아서 사소한 물건이면서도 거의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는 마데카솔이나 후시딘 같은 연고. 프랑스에서 구매하려면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필수품인 KF마스크. 프랑스에서도 물론 마스크를 팔지만, KF마스크처럼 보다 바이러스 방역에 특화된 마스크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해외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몇몇 지인들이 김치를 소량 싸가라거나, 다른 병원은 몰라도 치과 진료는 한번 받고 가라거나 하는 등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가는’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프랑스에 가면 한국 음식이 그리울 거라는 우려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도착한 지 2주하고도 이틀 정도 지난 지금의 소감으로는, 아직까지는 괜찮다. 개인적으로 한식을 매우 좋아하지만 한식 외에 다른 음식들도 다 공평하게 좋아하는 편이라, 살면서 적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2주까지 해외여행을 다니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딱히 한식을 그리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주가 아니라 두 달, 반 년을 넘게 지내다 보면 뭐 그립긴 그립겠지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프랑스에 없어서 내가 통탄해 마지않는 건 김치가 아니라, 뮤지컬이다.


  온갖 예술의 성지, 게다가 노트르담 드 파리로 잘 알려진 프랑스는 사실 뮤지컬에 있어서는 불모지 수준이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레 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 역시 실제로는 브로드웨이에서 완성된 미국 뮤지컬이고, 프랑스의 3대 뮤지컬 흥행작이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괜찮을 것 같다(‘뮤지컬’ 십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니!). 뮤지컬 하면 브로드웨이 아니면 웨스트엔드, 그러니까 미국 아니면 영국이 먼저 떠오르는데, 정말 그게 딱 세계 뮤지컬 시장의 실제임을 체감하게 되는 부분이라고나 할까. 예로부터 조선 땅에서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낼 때 저기 서쪽 동네에서는 예술하는 놈들이란 죄다 빠리로 모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고 하건만, 그 중에서도 뮤지컬만은 예외였던 모양이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뮤지컬 <레베카>, <모차르트!> 등의 원작자인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 같은 거장들이 툭하면 ‘한국 뮤지컬 최고’라고 찬사를 보내는 인터뷰들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런 멘트들을 볼 때마다 그냥 라이선스를 팔아넘기는 나라에게마다 하는 별 뜻 없는 인사치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뮤지컬이 정말 세계적인 수준이 맞다고, 이 연사 이제는 당당히 외칠 수 있을 것만 같다. 단지 국민적인 관심과 시장의 크기만 고려해봐도 그렇다. 내가 뮤지컬에 아무 관심이 없던 때를 돌아봐도 1년 365일 내내 길거리에, 버스 옆구리에, 지하철 광고판에 꼭 당시 상연 중인 뮤지컬들의 홍보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뮤지컬을 전혀 몰라도 제목들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아, ‘그날들’이라는 뮤지컬이 있구나, ‘위키드’가 이번에 또 하는구나, ‘데스노트’도 뮤지컬로 만들어졌구나, 하는 식으로.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은 가족 단위로, 내지는 연인과 함께 대형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을 보러 가곤 했다. 그런 식으로 <캣츠>와 <위키드>, <라이언 킹> 등을 봤었다. 그러다 몇 해 전, 박은태 배우 주연의 <지킬 앤 하이드>를 관람한 후로는 흔히 말하는 ‘뮤덕’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말이다.


  프랑스어로 뮤지컬은 ‘Comédie Musicale’이다. 일단 이름이 길다. ‘오페라Opéra’나 ‘영화Cinéma’, ‘클래식Classique’에 비해 애써 두 단어를 합쳐 설명해내려 노력한 모양새에서 벌써 좀 마이너한 느낌이 나지 않는가? 프랑스는 작년 10월부터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장을 잠정 폐쇄했고,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인 5월 19일부터 재개장을 시행했다. 이 날은 저녁 7시에서 9시로 통행금지 시작 시간 변경, 카페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의 취식 허용과 같이 보다 실생활에 밀접한 변화가 일제히 시작된 날이기도 해서 시민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문화와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와 관련한 소식 또한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에서 드디어 공연, 영화 관람이라니. 열심히 찾아본 결과 불어로 된 공연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나에게 딱 한 가지의 희망이 있었다. 뮤지컬 <그리스>의 오리지널 프랑스 투어 공연이 이번에 최초로 지역에 따라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이라는 사실. 문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서는 안 한다는 거다. 공연이 열리는 가장 가까운 곳이 기차 비슷한 걸 타고 가면 여기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지역으로, 해당 공연은 10월 개막 예정. 예매 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아직 자리도 많고, 가격도 착하다. 보러 가야지. 근데 ‘오리지널Grease l’original’이라길래 정말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의 내한..아니 내불(?) 공연인 줄 알았건만, 구글에 검색하니 작년에 진행한 해당 공연의 프랑스 오디션 공고가 뜨는 걸로 봐서는 사실상 오리지널이 아니라 라이선스 공연인 모양이다(해당 뮤지컬이 처음 만들어지고 공연된 곳의 팀이 통째로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 다른 나라에서 공연하는 것을 ‘오리지널’, 뮤지컬의 제목과 내용과 음악, 의상, 대사 등 모든 것을 그대로 수입해오되 언어만 수입국의 것으로 번역하는 것을 ‘라이선스’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야 영화로도 보고 한국 버전 뮤지컬 영상들도 종종 봤으니 내용은 거의 알지만, 넘버(노래)들은 영어여도 대사가 전부 프랑스어일 텐데 괜찮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덕후의 미덕은 본디, 일단 예매하고 보는 것. 10월이면 불어도 지금보단 네다섯 달치는 늘어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일단, 선예매 후고민이다.








(사진은 한국에서 출국 전 마지막으로 보고 온 뮤지컬, <팬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뮤지컬의 전체 넘버를 여태 무한반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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