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화여자중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신봉조 교장 선생님이 호출하여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 옆에 한 분이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윤봉춘 영화 감독이 있었다. 윤봉춘 감독은 배우 윤소정의 아버지이자 배우 오현경의 장인이다. 윤봉춘 감독은〈유관순〉영화를 촬영할 것이라고 했고, 교장 선생님은 유관순 의사와 독립을 위한 활동상을 영화로 알리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관순 역으로는 얼굴이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전문 배우를 데리고 왔으며 친구 역할을 할 조연 배우들을 우리 이화여자중학교에서 뽑는다고 했다. 윤봉춘 감독이 앞에 선 아이들 중에 나를 제일 먼저 뽑고 일고여덟 명쯤 더 지명했다. 감독님은 유관순과 친구가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장면을 첫 장면으로 찍을 계획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운동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으니 마침 농구부 주장이었던 내가 유관순 친구 역할을 하며 운동장 바닥에 드러눕고 유관순 역의 배우가 공을 빼앗는 장면을 연기하게 되었다. 유관순 의사가 이화학당에 다닐 당시, 실제로 학교 내 기숙사에서 살았으므로 학교 안에 있던 큼직하고 평평한 돌판에 빨랫감을 비비며 빨래하는 생활 장면도 찍었다. 나중에는 학교 전체가 수학여행을 간 경주까지 촬영 팀이 따라와 우리 '유관순 영화 조연배우’들은 경주에 가서도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 붉은 댕기를 매고 석굴암, 다보탑, 첨성대, 안압지 등 여기저기에서 촬영을 했다.
동트기 전 새벽 3시쯤, 전교생이 토함산에 올라갔다. 예나 지금이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면 토함산 일출을 보는 것은 여전히 대대로 내려오는 기본 일정이다. 육상선수에다가 농구선수까지 겸했던 나는 체력이 월등해 토끼와 거북의 동화에서처럼 앞장서 가다가 도중에 잠시 앉아 쉬는 토끼의 여유를 부렸다. 그러다 잠시 후에 보니 너무 쉬었던지 몇 남지 않은 아이들만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었다. 나를 한참 앞서서 이미 산을 올라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1등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나는 그때부터 다시 벌떡 일어나 기를 쓰며 쉬지 않고 한달음에 산을 뛰어올라 갔다. 영화 촬영 때문에 한복을 입고 버선을 신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올라 갈 수 있었는지, 운동을 해서 튼튼하고 단련되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얼마나 어떻게 달렸는지 모르겠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이 턱에 차도록 내달렸다. 기어이 친구들을 다 제치고 첫 번째로 도착하여 큰 숨을 내쉬며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후, 일착으로 석굴암에 가서 기도를 했다. 우리집은 실천적 불교신자는 아니나 그 당시 많은 사람들처럼 불교적이고 유교적인 가풍 아래 자랐다. 어떤 소망이 있었는지, 무엇을 기원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다 난다.
나중에〈유관순〉영화를 보니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빼앗는 장면이 첫 장면으로 나와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영화는 무성영화라고 했다. 지금 기억해내려니 머릿속에서도 장면은 보이는데 역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개봉 전에 음향 없이 출연 스태프가 먼저 봐서 소리가 덧씌워지지 않았던 걸까 의문을 품어 본다. 다시 보고 그게 무성인지 유성인지 확인했으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필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유관순 소재로 촬영한 최초의 영화였다. 이후에도 윤 감독은 유관순 영화를 계속 찍었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유명했던 배우 도금봉이 유관순 역을 맡았다. 손꼽아 보니 별별 추억이 다 있다. 학생 중에서 뽑힌 참에 이끄는 대로 성의를 다했고 재미나고 흥도 솟는 만큼 즐겁게 달려들었다. 연극, 영화가 뭔지도 몰랐는데 내가 유관순의 친구 역으로 영화에 출연할지를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운명, 나의 삶의 길이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 몰라도 하나씩 찾아가는 인생이 참 재미있었다. 연기 연습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데 영화 한 편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이런 경험 덕분인지 나중에 대학 때나 직장인 시절에 부산에서 연극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기회가 주어지면 두려움은 있었으나 큰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기울였다. 그렇게 주어진 경험은 내 시야를 넓혔고, 넓어진 시야는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했다. 불어난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만큼 딱 그 한도 안에서 인생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영화 출연 제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는 없었고 윤봉춘 감독의 영화 〈유관순〉 제1편에 출연했던 사진과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퍼즐 맞추기처럼 삶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맞추어졌다. 하나를 하면 그다음이 이어졌고 또 그다음이 이어졌다. 사람도 하나 둘, 연이 맺어졌다. 나는 이제 만 장도 넘는 인생 퍼즐을 거의 다 맞춘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