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ffer Apr 20. 2023

이토록 확실한 미래

Desk

* 더 많은 아티클은<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지만, 선요는 스스로를 정원사라 부른다. 그의 정원은 4평 남짓한 방이다. 녹색으로 가득한 방 한가운데 커다란 책상이 보인다. 선요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삶의 균형을 맞춘다. 식물과 문구,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그곳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이 움트는 확실한 미래가 있다.




구입 시기
2022년 봄

책상과의 시간
퇴근 후, 오후 7시쯤 시작하는 저녁 일과

책상 앞 루틴
먼저 식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적어두는 다이어리를 확인한다. 식물을 돌본 후에는 그날그날 손에 잡히는 책을 읽는다. 뉴스레터 발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노트북으로 원고를 쓰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넷플릭스를 본다.

몰입하는 주제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은 없다. 주로 식물에 관한 것들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관리 루틴이나 식물을 가꾸며 떠오르는 상념 등을 생각하고 기록한다.

성장의 원동력
온전히 내 취향대로 꾸민 책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선요의 방은 싱그러운 초록빛 식물과 그윽함을 풍기는 원목 가구, 관심 분야의 다양한 책과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빈티지 오브제로 가득 찬 비밀 정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간을 꾸리는 데 능숙하진 않았다. 자기만의 방은 뜻밖에도 막다른 길에서 피어난 선택지였다. “본업은 각종 의학적 검사를 수행하고 분석하는 임상병리사예요. 팬데믹 시기에 PCR 검사를 담당하면서 번아웃을 겪었어요. 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밖에서 다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막상 방을 꾸미려니 막막하던 순간에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 〈오만과 편견〉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영화 속 빅토리아 시대의 인테리어 이미지를 스크랩하곤 했다. “금방 질려서 기껏 산 가구를 바꾸거나 영문도 모른 채 식물을 죽이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 과도기를 거치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와 내 방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고르는 안목이 생겼죠.

지금 사용하는 책상은 그의 세 번째 책상이다. “영국 시골 마을의 어느 집에 있을 법한 러프한 고재 책상을 오랫동안 찾았어요.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거나 토분을 하나 올려둘, 얼룩이 생겨도 멋스러운 책상을 원했는데 작년 봄에 우연히 발견해 큰 것과 작은 것을 함께 구입했어요. 아무래도 책과 소품이 많은 편이라 큰 책상을 더 자주 사용해요.”





선요에게 식물은 단순히 인테리어 소재를 넘어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살아 있는 식물을 소품처럼 여겼다는 걸 깨닫고 식물 카페에 가입해 기초부터 배웠다. 죽어가는 식물을 살리겠다고 분갈이도 해보고, 벌레가 생긴 아카시아 이파리 수백 장을 닦아내기도 했다. “매일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으니 식물이 새잎을 내고 가지를 뻗더라고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들었나 봐요. 이제 식물이 없는 일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4평 정원 속 식물은 점점 늘어나 현재는 70가지에 이른다. 그중 가장 아끼는 것은 클리핑 로즈메리다.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줬을 뿐인데, 매일매일 새순이 나고 보랏빛 꽃이 피었다. 아침에 눈뜨지 않길 바랄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커가는 식물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내일을 기다리게 됐다. “가드닝은 매일 확실한 미래를 그리는 일이에요. 겨울에 잎을 떨구어도 봄이 오면 새잎이 나요. 식물의 시간에 발맞춰 살아가면서 느끼는 안정감과 성취감은 상상 이상이에요.





퇴근 후면 그는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자신과 식물을 돌본다. 가장 먼저 식물 정보를 전부 적어둔 다이어리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꽃과 잎의 상태를 체크한다.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 읽거나 저녁 내내 원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보기도 한다. 무엇이든 스스로를 채우는 일을 한다. 두 달 전부터는 식물과 함께하는 일상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조용한 회복의 저녁을 쌓아가며 더 큰 꿈을 이룰 날을 차분히 기다린다. “식물 일기를 아카이빙한 책을 내고, 뉴스레터 구독자분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하고 싶어요. 더 넓은 공간이 생긴다면 식물 이야기를 나누는 정기 모임도 열고 싶고요.” 식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나는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많고 많은 물건 중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 세 가지를 골랐다.





[on the DESK]


1, 2. 영화 속 주인공이 사용하는 모습에 반해 4~5년 전부터 딥펜에 빠졌다. 글씨를 쓸 때 사각거리는 소리도 좋고, 두꺼운 펜닙으로 쓰면 악필이 조금 보완되는 느낌이다. 주로 브라우스 1.0mm 펜닙과 그라폰 파버카스텔 잉크를 사용한다.



3.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블록 램프를 항상 켜둔다. 크기와 조도가 적당하다. 책상을 여러 번 바꾸면서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새벽에 방을 샅샅이 뒤져 깨진 조각을 찾아 잘 붙였다. 티는 나지만 사용하는 덴 문제없다.



4. 얼마 전 구입한 빈티지 클립 통. 흔치 않은 녹색이 맘에 쏙 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클립을 한데 모아두니 편하다. 한 독일인이 퇴직할 때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용했던 것으로, 그만큼 많은 시간을 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장소










Editor Yang Seulah

Photographer Maeng Minhwa

작가의 이전글 변화를 만드는 영감 수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