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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고통, 우울은 예고 없이 닥친다. 패션 바이어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김현경은 지난했던 암 투병 끝에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 수련한 요가와 명상이 그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자’, 명상 안내자의 위치에 서도록 했다.
직업
명상 안내자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나를 돌보기 위해 익힌 수련을 거짓 없이 나눌 수 있는가?
요가와 명상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나를 위해서 열심히 수련했고, 그러한 여정은 자연스럽게 요가와 명상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줬다. 명상의 목표는 각자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기에 명상 안내자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명상이 ‘나’로부터 비롯됐는지, 그것이 진심으로 나누고 싶은지를 자신에게 자주 물었던 것 같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지금 내 상태가 편안한가? 자아와 욕망으로 점철된 ‘원하는 것’보다 지금의 나를 평화롭게 하는 ‘필요한 것’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삶의 여백과 일을 조화롭게 배치한다.
명상 안내자로서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맺다 명상 연구소에서 웰니스 콘텐츠를 기획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때로는 외부 기업 강의를 통해서 직장인들의 마음 챙김과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드리기도 해요.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삼성인력개발원의 명상센터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패션 바이어로 일하다 맺다 명상 연구소를 열게 된 계기에 대해 들려주세요.
한창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던 30대 중반에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암 진단을 받고 항암 6차까지 치료를 받았죠. 회복하는 과정에서 친한 언니로부터 요가와 명상을 추천받았어요. 그때 요가의 마지막 자세인 땅에 눕는 사바아사나를 하다가 혼자 눈물을 펑펑 흘린 기억이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제 옆을 지나가다가 휴지를 살포시 건네셨어요. 무언가 제게 손을 내밀어주는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의료적인 행위로서 몸 상태를 체크했을 뿐 내 몸과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보듬어준 적은 없었어요. 그동안 아팠던 나를 진정으로 회복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고, 나의 경험을 다른 환자들에게도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도반들과 함께 요가와 명상을 꾸준히 공부하고 수련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어요. 요즘은 더욱 전문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명상심리상담학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어요.
맺다 명상 연구소의 이름을 정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이름은 명상 라운지였어요. 사람들이 라운지에 드나들듯 자유롭게 명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전문성을 더 높이고 싶어서 연구소라는 명칭을 넣게 됐어요. 산스크리트어로 ‘Metta’는 ‘자비’, ‘자애로움’, ‘loving kindness’라는 뜻이에요. 제가 지인들과 대화하며 이 단어를 썼는데 한글 ‘맺다’냐며 묻더라고요. 그런 에피소드에서 착안해서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맺다 명상 연구소로 이름 짓게 됐어요.
아무래도 마음이 힘든 분들을 대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맺다 명상 연구소만의 기준, 철학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
이곳을 찾은 분들께 항상 말씀드리는 것은 주도성이에요. 세션에 여러 번 참여할수록 많은 분이 제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생겨요. 무슨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물어보시죠. 명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고 주도적으로 사는 거예요. 그렇기에 저는 명상을 안내할 뿐이지 주도성을 찾는 것은 참여자의 온전한 몫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명상이라는 길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안내하고 잠깐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알아차리고 치유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는 등 변화를 꾀하는 건 명상을 하는 각자의 몫인 거죠.
그렇다면 명상이란 무엇인가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저는 명상을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명상하고 난 후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보통 일상에서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의례적으로 하곤 해요. 저 역시 직장 생활을 할 때 예의상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일 뿐 진심으로 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명상을 하고 난 후에는 감사한 마음을 정말로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자신을 돌보는 일이 어떻게 타인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나요?
여기 있는 이 물컵에 담긴 물이 사랑이라고 상정해 봅시다. 제 사랑이 반만 채워져 있다면 다른 사람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요?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사랑을 무리해서 타인에게 주려고 하면 정작 자신은 소진되어 무엇을 하든 마음이 내키지 않고 지치게 돼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차리면 내 컵에 사랑이 가득 차, 흘러넘치는 상황도 오겠죠. 그때 타인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예요.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컵을 채우나요?
명상을 꾸준히 해요. 요즘 해외에서는 마음 챙김(mindfulness) 보다도 ‘알아차림(awareness)’에 대해 더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요. 알아차림은 어떤 행위 안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인지하는 상태를 말해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넘어 내가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고 안정적인 상태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거죠. 이러한 알아차림은 지금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줘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두 가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원하는 것은 내 자아가 투영된 욕망이고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얻음으로써 좀 더 평화로워지고 온전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피곤해하면서도 컴퓨터 앞에서 더 일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이때 그의 욕망은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거죠. 하지만 알아차림을 수행한다면 5분이라도 침대에 누워 있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행동할 거예요.
일상에서 알아차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호흡 명상을 하면 욕망을 잠재울 수 있어요. 의자나 바닥에 반듯한 자세로 앉은 다음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주의를 기울여요. 만약 집중이 안 된다면 호흡에 숫자를 붙여보세요. 전통적인 명상 기법으로 수식관이라 불러요. 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 채로 호흡 명상을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어떤 자세든지 발바닥을 땅에 붙이는 것이 중요해요. 땅에 접지한 상태는 현실에 발 붙이지 않고 붕붕 떠다니는 망상을 호흡과 함께 현재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바쁘게 일상을 살다 보면 잠깐 멈춰 호흡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제가 편안한지를 기준에 두고 살아요. 제게 주어지는 많은 일, 공간에서 기획하는 수업을 욕심내서 하자면 더 많이 할 수 있겠지만, 한번 건강을 잃고 난 후에는 무리하거나 애쓰지 않으려 해요. 일과 휴식, 전체적인 삶이 조화로운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현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오랫동안 수련을 해왔는데, 명상에 관해 새롭게 알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최근 해외에선 ‘자비 명상’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지난 100년 동안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 명상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인정과 존중,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는 거죠. 에디터님이 이곳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던 건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사, 버스를 만든 사람들 덕분이었다는 걸 인지하는 거예요. 그런 추세에 저도 동의해요.
Editor Baek KaKyung
Photographer Lee Woo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