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세상은
낯선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노상카페에 앉아있는 시간이었다. 노상 카페에 앉아 누스누스 커피나 민트 티를 한잔 시키고서 책을 읽고 엽서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낯선 곳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나곤 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이 곳에서는 시선을 유독 많이 받는 느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한 번씩은 쳐다보고 가는 느낌이었고, 주문을 받는 웨이터도 꼭 한 번 이상은 더 쳐다봤다. 내가 외국인이라 쳐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문득 카페를 둘러보니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근 몇 주를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이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여자들이 카페에 오면 안 되는 문화라도 가진 곳인가 싶어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모로코에서는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여자들은 집안일을, 남자들은 바깥일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주로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외출을 잘하지 않고, 간혹 외출을 할 때도 혼자 보다는 여럿이 또는 결혼한 여자는 남편과 동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모로코 여자가 카페에 있는 일이 흔치 않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 여성전용 카페도 생기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이 너그러워진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여자가 카페에 있으면 “여자가 왜 카페에 오냐! 집안일이나 하지!”라고 혼내기도 하고, 심하면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어지간하구나 싶어 고개를 내 저었더니 카페 안 쪽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가리켰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카페 안 쪽에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스트립 걸”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 전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어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알았고, 나는 영어만 조금 할 줄 알아서 소통에 실패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내 손목을 덥석 잡더니 어디론가 가자고 했다. 나는 카페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할아버지는 지갑에 있는 돈을 보여줬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할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할아버지는 이내 자리를 떴다. 그때도 꽤 불쾌했는데, 오늘 남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그리고 남자는 내 이야기에 이해하라는 말만 했다.
모로코에 몇 주나 있으면서 카페에 여자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카페 안쪽에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남자는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혼나거나 쫓겨날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도대체 XX염색체와 XY 염색체의 차이가 뭐라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게 문화라면 당연히 이해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