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뷰 Apr 11. 2021

널 만나 다행이야. 멋진또라이

한 호스텔에서만 계속 머무르니 심심하기도 하고 새로운 곳도 경험하고 싶어서 묵는 곳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마침 에어비앤비에 괜찮아 보이는 가정집이 나와있었다. 위치도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의 중앙광장보다 조금 허름해 보이는 동네였다. 호스트 메티의 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허름한 동네와는 달리 집 안은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삼층 건물에 화장실과 샤워룸이 따로 있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동네라는 것을 알려주듯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한쪽 구석에는 기타와 피아노, 벽 한쪽을 채우는 책장도 있었고, 삼층에는 작은 별채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식수가 흐르는 작은 정원까지 있었다. 모로코에서 본 집 중에서 가장 멋진 집이었다. 아니, 유럽에서도 이렇게 멋진 집은 본 적이 없었다.


 호스트는 캐리어를 끌고 있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다짜고짜 포옹을 시도했다. 큰 키는 아니지만 울퉁불퉁 근육 때문에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더구나 다른 모로칸과는 달리 뚜렷한 이목구비에 흰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호스트라고 생각도 못했다. 방까지 짐을 옮겨 주고는 모르는 게 있으면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라는 말만 하고 나가 버렸다. 


호스트 메티는 좀 또라이 같은 기질이 있었다. 모로코인처럼 생기지 않은 자기의 외모를 이용해서 불어나 스페인어를 하며 모로코인들에게 장난을 쳤고, 샤워를 마치고 수건 하나 달랑 동여매고 신나게 춤을 추다 수건을 날리는 바람에 모두가 경악했는데, 본인은 아주 만족해했다. 또 드라이브시켜준다면서 게스트들을 데리고 나가서는 자신의 수레를 끌게 하는 개고생을 시키기도 했다.


메티의 집에는 일본, 이집트, 러시아 국적의 손님들이 이미 머물고 있었다. 메티는 오늘부터 저녁을 함께 해야 하는 규칙이 생겼다며 친구들을 소개해줬다. 그중에는 일본 국적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 한국말을 조금 구사할 줄 아는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엔 한국인이라고 소개해줘서 깜빡 속을 뻔했다. 저녁은 이집트 출신의 소녀, 디나가 이집트 전통요리인 쿠샤리(kushari)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모로코에 와서 이집트인이 해주는 이집트 전통요리를 먹는 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다. 디나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요리라며 망설였지만, 호스트 메티는 우리 중 누구도 쿠샤리를 먹어 본 적이 없다며 격려해주었다. 


요리는 두 시간이 흐른 뒤에나 완성이 됐고, 집 옥상으로 올라가 식사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쿠샤리는 밥과 렌틸 콩, 삶은 계란, 마카로니, 튀긴 양파 순으로 층층이 쌓여 있었고 토마토로 맛을 낸 수프를 기호에 맞게 뿌려 먹거나 부어 먹는 음식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배가 허리에 붙을 정도로 배고픔을 호소하던 우리는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눈 깜짝할 새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영어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는데 메티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각 나라 언어로 식사 소감을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디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지만 메티는 느껴질 거라고 했다. 디나는 처음 시도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고, 일본인 친구는 처음 먹어 본 이집트 요리가 입에 쏙 맞는다는 말을 했다. 러시아인 아저씨는 다소 쑥스러워했지만 누구보다 길게 진심을 표했고, 나는 모로코에서 이집트 전통음식을 먹는 일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메티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느꼈고 이해했다. 


식사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차 한 잔 씩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집트 소녀 디나는 유독 영어를 잘 못했다. 그때마다 메티는 모두에게 영어 사용 금지령을 내려 모국의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는 상대가 어떤 말을 하는지 맞추었다.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면서 디나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또 러시아인 아저씨는 말이 느린 사람이라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속도에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덧붙였는데, 메티는 러시아인 아저씨의 말 속도보다 빠르면 춤을 추는 벌칙을 정해 아저씨가 미안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또 쉽게 지루해하는 나를 위해서 한국에서 유명한 춤을 알고 있다며 강남스타일을 틀어 흥을 돋웠고, 모로코 남자들은 너무 치근 된다는 일본인 친구의 말에 멋진 욕을 알려주었다.


나는 메티를 참 멋진 또라이로 기억한다. 가끔 당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사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여행 중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인지 축복이다. 


이전 14화 HOOK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