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 이야기
잦은 왕래는 없었지만 카톡을 통해 평소에 인사를 나눴던 외내재종형제의 결혼식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하고는 정말 먼 친척과도 같습니다.
사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세상에 먼 친척의 결혼식까지 참석한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우애 좋은 어머니 형제분들 덕분에 여태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마침 결혼식장이 서울이고 주말 예식이라 오랜만에 외가 친척들도 뵐 겸 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벌이도 시원치 않고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던 관계로 예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축의금 액수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직장 생활을 할 만큼 했기에 어느 정도 수준의 금액이 적정한지 나름의 기준이 있었던 터라 결혼식 당일까지 제 자신과 줄다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늘 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만큼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풀지 못한 아쉬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이 오십을 넘기다 보니 축하해야 할 기쁜 일과 애도해야 할 슬픈 소식들을 번갈아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만인의 경조사를 모두 챙길 수 없으니 저의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정성으로 대하게 됩니다.
금액이 정해져 있진 않아도 준비한 정성으로 여태 쌓아온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다면 적정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후회나 아쉬운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 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늘 전제로 둡니다.
그래도 더 나누지 못하는 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여태 지녔던 저의 기준을 조정하던지 아니면 넉넉한 마음과 형편을 지녀야만 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벌어 쌓아 둔 돈이 내 돈이지만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쓰는 돈이 내 돈임도 잊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언젠가 어려서부터 우정을 나눴던 고향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친구의 결혼식 축의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내가 낸 축의금보다 내가 받은 축의금의 액수가 적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였습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며 상황에 따라서 축의금을 못 낸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던 친구보다 친하지는 않았어도 결혼식에 참석한 또 다른 친구의 더 많은 축의금을 보면서 그 친구가 더 가깝게 느껴졌었다며 우스갯소리도 나눴습니다.
돈의 크기로 관계를 규정지을 순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그것이 인지상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관계의 친밀성과 비례할 수 있는 넉넉함을 더 키우고 바라는 마음은 더 내려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