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은 시작된다

용기와 다시 만나고 싶다

by 디기리

몇 해 전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자 무작정 등산을 선택했습니다.


평소 산이라고 하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저였지만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간절함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집 근처 마트에 들러 등산화와 바지를 구입하고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산으로 출근했습니다.


목표는 무조건 산 정상이었습니다.


정상을 오르는 루트가 다양하다는 건 미리 검색을 통해 알았지만 일단 발길 닿는 곳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본 낯선 풍경, 겨울 초입에 들어선 차가운 바람 그리고 등산을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체력 등 뭐 하나 호락호락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음식조차도 챙기지 못한 산행 길은 말 그대로 배고프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산행 직전 편의점에서 챙긴 500ml 물과 초콜릿 바 하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그 힘듦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던 제게 또 다른 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난생처음 산 정상에 올라 감격의 사진도 찍고 산 아래의 광활한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 산 정상에 오르니 멀게만 느껴졌던 또 다른 산들이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그 느낌은 산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일단 땅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이끌었습니다.


단 하루치의 경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음식과 물을 챙기게 했고 없었던 용기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 준비와 용기를 갖고 산행에 나섰지만 초보자에게는 늘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몇 달에 걸쳐 지속된 산행은 몸과 마음의 안정뿐 아니라 산에 대한 저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주었습니다.


오르고 싶은 산 그리고 코스는 저마도 달라도 정상을 오르기로 했다면 그다음은 누구나 거스를 수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정상에 닿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간절한 생각이 주었던 값비싼 용기가 몰랐던 그리고 흘려보냈던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곤 합니다.


등산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인생을 배워간다고요.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 역시 그런 시간을 통해 저를 다시 돌아봤고 덕분에 치유의 시간들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한발 한발 느렸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험난하게 올랐던 그때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하든 그저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와 사진 한 장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평안이 찾아왔지만 제 마음은 어느새 쉬운 길과 방법만을 쫓는 시선에 또다시 갇혀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한창 험난하게 올랐던 산 정상에서 내려와 처음 올랐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또다시 산을 찾아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 다시 산을 오른다면 어디에 올랐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올랐느냐를 마음에 새겨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험난한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기와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