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꿈을 꿀 시간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직함을 얻으려고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평판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를 꿈꾸게 된다.
그때부터는 삶의 주체가 '타인'이다.
내가 남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다가 나이 들어 은퇴하면 자기 이름 앞에 새겨져 있던
직함의 상실에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단지 직(職)에서 물러났을 뿐임에도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괴로워한다.
삶의 완성되어야 할 시기에,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해야 될 정점의 시기에
추악한 본능만이 꿈틀대는 빈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폭주 노년』_김욱
나이 49세에 또 다른 꿈을 심었습니다.
버겁고 두려웠지만 기존의 경험을 되살려 노심초사 온 힘을 다해 키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싹이 나고 눈에 띌 정도로 열매를 맺는 듯했는데 예전만큼 탐스럽거나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자세히 보니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직함의 열매를 맺으려 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둘 때도 되었지만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이 똑같은 열매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그 열매와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닿아 타협을 해보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직함이라는 열매가 갖고 있는 중독성에서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고 기능을 다한 나무를 통째로 베어낼 용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날고뛰던 젊은 시절에는 능력과 직책이 이름 앞에 버젓이 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유효기간도 짧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하찮은 직함이라도 들고 있어야 인간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폭주 노년』의 김욱 작가의 말처럼 단지 직(職)에서 물러났을 뿐임에도 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했고, 아빠, 아들 그리고 남편이라는 직함의 소중함도 등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사회적 시선과 점점 거리를 두고 떨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불리는 직함과 타이틀이 없어도 제가 누구인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두꺼운 안면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대할 때 직함에 쓰여있는 타이틀이 아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나 사용하는 언어에서 그 사람을 비춰보게 됩니다.
아직까지 많은 면에서 사회적 직함이 주는 이점들은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 이점을 어떻게든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때때로 눈물겹게 느껴집니다.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내가 진정 바라고 원했던 인생이라면 존중받을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다만 그 직함이 떨어지고 난 뒤 밀려드는 상실과 후회가 있을 것 같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여태 어쩌면 내세울 것이 없이 직함 뒤에 숨기 위한 노력에만 너무 집중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직함에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납득되고 인정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후차적으로 부과된 신분에 종속되기보다는 날 때부터 타고난 자신만의 모습을 찾고 원하는 삶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