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옛 남자 친구와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모든 게 불안했던 20대의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과 함께 사는 삶을 스스로 뿌리치는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은 제로에 가까웠다. 단지 함께 영화를 보는 남자와 손을 잡을까 말까 하는 꽁냥 거리는 설렘만 있었을 뿐. 이혼도 자아를 찾는 여행도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영화는 '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영화 리스트에 오랫동안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이 영화를 찾게 된 건 남편과 아이가 시댁으로 여행을 떠난 주말이었다. 금요일 저녁, 남편과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현관문을 닫는 그 순간부터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아이의 기저귀도, 장난감과 떡벙으로 가득한 짐꾸러미에도 구속되지 않는 2박 3일 온전한 어른의 시간이 허락된 것이다. 지나가는 아기들을 보며 조금은 허전하고 그리웠지만, 그것도 찰나였다.아기가 울거나 힘들어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급하게 먹는 밥이 아니라, 혼자 먹는 밥이 참으로 오랜만이고 꿀맛이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엄마의 시간을 사느냐 서로 틈을 낼 수 없었던 술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와인을 한 병 나누어 마셨고, 토요일 아침에는 난생처음 혼자 찜질방에 가서 몸을 지지고 세신 서비스를 받았다. 천만명이 봤다는 알라딘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배우 윤여정의 추천대로 얼음을 넣은 화이트 와인 한 잔과 함께 그 영화를 다시 켰다. 그리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주인공 리즈의 친구는 '아이를 갖는 건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한 줄의 문장이 아이를 임신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포기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엄마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 같아 격한 공감이 갔다. 그리고 아이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아이는 너무 예쁘다는 말과 함께 꼭 이 말을 전해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주변에서 결혼했으니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엄마로서의 삶의 무게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수반되는 숱한 희생과 포기를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다고, 아이를 갖지 않는 삶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삶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처럼 일 년 동안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나니 사람들이 왜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음 달이면 돌이 되는 아이는 손가락으로 주먹밥을 쏙 집어 먹기도 하고 울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과 고집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가서 생애 첫 사회생활을 씩씩하게 시작했고, 나는 다시 회사로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딱 1년이 지난 후 이제야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조금에서야 알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아이를 아기띠에 들쳐 매고 아쿠아리움에 가 물고기도 보고 상어도 봤다. 수족관을 손으로 팡팡 치면서 좋아하던 아이만큼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아이를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견고하게 정립해간다. 아이를 통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다.
앞으로 짧게는 20년, 길게는 죽을 때까지 서준이 엄마로서의 삶은 문신처럼 지울 수 없는 내 인생이 되었다.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최악의 삶은 자식에게 닮고 싶지 않은 부모가 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새긴 문신이 후회스럽거나 가리고 싶지 않고 나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엄마로 맞이하는 매일을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