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여성을 바라보다
그 옷 다렸어? 아~내가 오늘 입는다고 다려 달라고 했잖아~!
한 껏 짜증을 내고 다른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그리고는 과제 안 해온 학생마냥 진심으로 어쩔줄몰라하는 아내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마음이 짠했다.
내 아내이기 이전에 36세 여성인 그녀는 내 빨래를 해주려고, 셔츠를 다려주려고
나랑 결혼한 게 아닐 텐데 말이다.
한동안 한국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명제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진 적이 있다.
일만 하면서 지내고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가장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다수였다.
상대적으로 엄마의 고충을 말해주는 콘텐츠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간적 외로움을 느끼는 아빠 못지않게 사회적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엄마의 마음도 가슴 아플 텐데 말이다.
새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에 큰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 만큼 워킹맘과 경력단절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유능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창조적 사명 때문에 직장에서 홀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전에 공기업 비서로 경력을 쌓아오던 아내도 결혼이라는 시기와 재계약 시기가 잘 맞지 않아 지금은 집에서 내 비서로 일하고 있다.
퇴근 후 내 옷장에는 문제의 셔츠가 잘 다려진 채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자기는 꿈이 뭐야? 비전 말고 하고 싶은 일이나 그런 거
저녁을 먹다가 무심한 척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왜 이제야 물어봤냐는 듯 잠들기 전까지 이어졌다.
청소년 상담에 관심이 많아 공부해보고 싶고
목공을 배워서 가구를 만들어 보고 싶고
나와 함께 예쁜 카페를 하고 싶다고 했고
함께 갔던 스페인에 다시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고령화 문제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노인 요양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국가적 사업의 포부를 고백했다.
다 듣고 나니 마음 한켠이 짠하고 미안했다.
내가 이렇게 꿈 많은 여자랑 살고 있구나.
나도 꿈이 하나 더 생겼다.
내 아내의 꿈도 함께 이루고 싶은 꿈 말이다.
그리고는 잠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흰색 스니커즈 너무 더러워졌어, 빨아줘
좀 전까지 노인문제에 열변을 토하던 아내는 갑자기 코를 골았다.
당신에게도 올라야 할 길이 있겠죠.
그 길 가운데 나를 만난 거지, 그 길의 끝이 내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