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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 Hyun Im Apr 12. 2016

음악은 최고의 일기다

# Hotang Fiction.01

눈을 떠 보니 병원 이었다.


내 머리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가녀린팔목의 한 여자가 큰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안났다.

의사 선생님은 ‘기억상실증’이라고 했다. 진부한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다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해 미안했다. 그녀의 정성어린 간호로 몇 주 후 퇴원을했다. 여전히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신문기사를 접했기에  희망을 가졌다.

‘영국의 한 요양원이 치매노인 환자의 치료를 돕기위해 1950년대의풍경을 재현해 작은 거리를 만들었다. 기억의 거리 (MemoryLane)는 우체국, 선술집, 과일과게를 비롯해당시 개봉했던 영화포스터 까지 재현했다. 환자들은 친숙한 환경에 안정감을 느껴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평균 12% 이상 회복 되었다.’

아내와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함께 거닐던 곳을 다시 찾았다. 대학시절 만났다는 우리는 대학가를 누비고 함께 즐겨먹던 식당에 가보았다. 전공서적까지 뒤졌지만, 소용 없었다.

연애초기 함께 봤던 영화도 다시보았지만, 내겐 새로운 감동이었다. ‘타이타닉’ 특수효과에 놀라고,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의 매력에 빠졌다. ‘식스센스’의 반전엔 소름이 돋았다.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채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올림픽대로를지날 때였다. 그녀는 자주 듣던 CD라며 스티비 원더의 ‘moon blue’를 들려 주었다.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거짓말 처럼 다 기억이 났다.


함께듣던 그 음악으로, 그녀와의 대화와 작은 스킨십 마저생생했다. 그녀와의 기억을 되찾으니 나보다 그녀가 더 기뻐했다.

음악은 최고의 일기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소중했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플라이투더스카이의 ‘Sea of Love’를 들으면 고3때 독서실에서 먹던 포도맛 음료수의향까지 입안에 퍼지는 것 같다.

자주듣던 음악과 옛날의 음악까지 들으며 기억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소방차의 노래를 들으며 어릴적 족발을 입에 물고 춤추던 아이와, 핑클의노래를 들으며 이효리 집앞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던 중학생이 눈에 아른거렸다. 클래식을 들으면 비올라를전공했던 옛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르곤 했다. 수 많은 음악이 내게 잃어버린 기억을 선물했다.


다른 음악과는 달리 국악이 듣기 싫었다. 특히 ‘아리랑’을 들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유난히 싫었다. 이상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다른 음악들은 괜찮은데 아리랑은 못 듣겠지?”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빠… 아리랑 치기 당했어…”


역시 음악은 최고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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