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은시

나의 이고

by 김소영


쥐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꺾을 각오를 하고

흔들기를 반복한다


쉼 없이 돌리고 쥐고 흔들다 보면

지어낸 아니 뱉어낸

일그러진 얼굴들을 마주한다


본 적 없던 얼굴들은

펜으로 낳은 내 피와 살이요

쥐고 흔들던 내가 틀림없기에


마주하기 전에 펜을 내려놓는다

덮었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내가 아님이 분명한데


대체로 상실되지 않은 채 남는

펜의 기울임은

검은 피를 흘리며

숙명을 다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땀을 흘리고

뼈를 깎아 만든

나의 생산물들은

미우나 고우나 자식 같지만


퍽이나 맘에 들지 않아

더 짓기를 포기하고

펜을 잃어버린다

같은 펜을 찾지 못하게


설레고 기대고

첫사랑이고 또 끝사랑이라

슬퍼 울던 날도

함께 해주던 것을

쉽지 아니하게 버린다


결코 다시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지 못하게

결코 다시 나의 슬픔을 알리지 못하게

결코 누구도 나 조차도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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