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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Sep 10. 2022

'지금 네가 누워 있을 군번이냐?'

<불면증 활용법>

  ‘지금 네가 누워있을 군번이냐?’


  결혼 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특히나 임신 중이었을 때, 들었던 군번 이야기다.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첫 번째이자 마지막 조카며느리인데, 다 누워 계셔도 나는 누워 있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자꾸 ‘지금 네가 누워있을 군번이냐… 군번이냐… 군번이냐…’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자다 가도 화가 났다.


  전문가들은 불면증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성이 깊다고 하는데, 코로나 블루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큰 삶의 변화나 자극으로 전에 없던 불면증이 생기면, 사람들은 하루 7시간 정도의 잠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는 점차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나는 사실 잠이 워낙 없는 사람이라 하루 5시간 정도만 자면,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었는데, 최소 5시간 정도의 잠이 확보되지 않으니, 일상이 자연스레 무너졌다. 만병의 근원은 당연히 스트레스이겠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처음 겪는 불면증은 새로 사귄 친구처럼 어렵고,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친구라고 부르기로 한 이유는 앞으로 함께할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3일 이상 못 자는 날에는 아예 포기하고, 친구랑 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넷플릭스 친구와 함께 몇 날 며칠을 신나게 놀았다. 물론 신난 것도 잠시, 거의 저승 잠을 3일에 한번씩 몰아 자곤 했는데, 건강상태가 확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좀 더 현명하게 불면증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저녁 해가 지기 시작하면, 곡기를 끊는다. 배가 고파도 잠을   없겠지만, 배가 너무 부르면 나의 위장은 잠자기를 거부했다. 스트레스에 기인한 불면증은 폭식이나 혹은 단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많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폭식이 너무 심해져서, 의식적으로 먹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나의 위장이 정말  밖에 있는  행동했다. 그래서 의식적인 저녁 단식과 함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고, 산책을 하고, 자기  한두 시간 안에 끝낼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들과 하는 산책의 시작은 여름의 기억 전부를 차지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고, 하루  나도 아이도 가장 많이 웃는 시간이 되었다. 한두 시간의 일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에 응축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있었고, 마치 12 전에 다음날 새벽 배송을 시켜야만 하는 것처럼 효율적이게 선택과 집중을   있었다. ‘그래서 피곤하게 만들어 잠에 들겠다는 심산이야?’라고 물을  있겠지만, 사실 잠에 들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시간을  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여름 개구리 소리가 나고, 이제 가을바람이 발끝에 왔다 갔다 발을 간지럽히는 시간이 되면, 이불속에 발을 집어넣고, 책을 봤다. 이미 이불을 덮은 작은 생명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읽는 책은  어느 자장가 보다도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렇듯 어둠을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둠은 생각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잠을 못 자니, 미칠 것 같아’라는 말을 달고 살곤 했는데, 밤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걸어주었다. 낮에는 느끼기 어려웠던 고요 속에 풍요로운 마음이라던가, 산책할 때 느끼는 자연의 소리라던가, 아니면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친구 삼을 기회 같은 것 말이다. ‘잠을 못 자니, 좋은 게 많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부터는 정말 뻔하게도 잠이 좀 오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이지만, 깊게 자는 시간이 늘어났고, 지친 나귀처럼 어리석게 솜을 지고 물에 뛰어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술에 취해 잠드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질 수 없었던 시간 중에 첫 번째가 운동 시간이고, 두 번째가 사색의 시간이었는데, 운동도 사색도 할 수 있게 되니, 사실 불면증 덕에 삶이 풍족해졌다고 해도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원인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거나, ‘내가 겪어 봤는데, 별거 아니야’등의 조언들이 해결해 주지 못했던 내 문제아, 친구는 ‘아몬드’의 곤이가 그랬던 것처럼 극적이지만 속 깊은 친구가 되어 나를 살렸다.


  요즘 세상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불면증은 어쩌면 그런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 겪는 ‘과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처럼 지나갔다가, 또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 거듭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끝나지 않을 어둠은 없다. 잠시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영원할 거 같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걷기를 멈추지 않으면, 어둠은 생각보다 쉬이 빛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그것도 당신에게 아주 꼭 맞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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