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활용법>
‘지금 네가 누워있을 군번이냐?’
결혼 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특히나 임신 중이었을 때, 들었던 군번 이야기다.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첫 번째이자 마지막 조카며느리인데, 다 누워 계셔도 나는 누워 있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자꾸 ‘지금 네가 누워있을 군번이냐… 군번이냐… 군번이냐…’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자다 가도 화가 났다.
전문가들은 불면증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성이 깊다고 하는데, 코로나 블루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큰 삶의 변화나 자극으로 전에 없던 불면증이 생기면, 사람들은 하루 7시간 정도의 잠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는 점차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나는 사실 잠이 워낙 없는 사람이라 하루 5시간 정도만 자면,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었는데, 최소 5시간 정도의 잠이 확보되지 않으니, 일상이 자연스레 무너졌다. 만병의 근원은 당연히 스트레스이겠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처음 겪는 불면증은 새로 사귄 친구처럼 어렵고,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친구라고 부르기로 한 이유는 앞으로 함께할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3일 이상 못 자는 날에는 아예 포기하고, 친구랑 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넷플릭스 친구와 함께 몇 날 며칠을 신나게 놀았다. 물론 신난 것도 잠시, 거의 저승 잠을 3일에 한번씩 몰아 자곤 했는데, 건강상태가 확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좀 더 현명하게 불면증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통’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저녁 해가 지기 시작하면, 곡기를 끊는다. 배가 고파도 잠을 잘 수 없겠지만, 배가 너무 부르면 나의 위장은 잠자기를 거부했다. 스트레스에 기인한 불면증은 폭식이나 혹은 단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많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폭식이 너무 심해져서, 의식적으로 먹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나의 위장이 정말 배 밖에 있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의식적인 저녁 단식과 함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고, 산책을 하고, 자기 전 한두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들과 하는 산책의 시작은 여름의 기억 전부를 차지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고, 하루 중 나도 아이도 가장 많이 웃는 시간이 되었다. 한두 시간의 일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단 시간에 응축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고, 마치 12시 전에 다음날 새벽 배송을 시켜야만 하는 것처럼 효율적이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피곤하게 만들어 잠에 들겠다는 심산이야?’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잠에 들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그 시간을 잘 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여름 개구리 소리가 나고, 이제 가을바람이 발끝에 왔다 갔다 발을 간지럽히는 시간이 되면, 이불속에 발을 집어넣고, 책을 봤다. 이미 밤의 이불을 덮은 작은 생명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읽는 책은 그 어느 자장가 보다도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렇듯 어둠을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둠은 생각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잠을 못 자니, 미칠 것 같아’라는 말을 달고 살곤 했는데, 밤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걸어주었다. 낮에는 느끼기 어려웠던 고요 속에 풍요로운 마음이라던가, 산책할 때 느끼는 자연의 소리라던가, 아니면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친구 삼을 기회 같은 것 말이다. ‘잠을 못 자니, 좋은 게 많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부터는 정말 뻔하게도 잠이 좀 오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이지만, 깊게 자는 시간이 늘어났고, 지친 나귀처럼 어리석게 솜을 지고 물에 뛰어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술에 취해 잠드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질 수 없었던 시간 중에 첫 번째가 운동 시간이고, 두 번째가 사색의 시간이었는데, 운동도 사색도 할 수 있게 되니, 사실 불면증 덕에 삶이 풍족해졌다고 해도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원인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거나, ‘내가 겪어 봤는데, 별거 아니야’등의 조언들이 해결해 주지 못했던 내 문제아, 친구는 ‘아몬드’의 곤이가 그랬던 것처럼 극적이지만 속 깊은 친구가 되어 나를 살렸다.
요즘 세상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불면증은 어쩌면 그런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 겪는 ‘과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처럼 지나갔다가, 또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 거듭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끝나지 않을 어둠은 없다. 잠시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영원할 거 같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걷기를 멈추지 않으면, 어둠은 생각보다 쉬이 빛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그것도 당신에게 아주 꼭 맞는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