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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an 26. 2023

친구가 보고 싶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한 번도 그리한 적 없는데, 우리는 같은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무한대로 돈다. 그러다 눈을 잔뜩 맞고 들어와 벽에 네발을 데고,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스무 살은 그러했다. 사랑한다 말한 적 없었지만,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같은 사랑은 아니었다. 나의 친구는 레즈비언이었다.  


  요즘 시대에 무엇이 어떠냐. 친구인데, 그것이 문제가 되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무엇을 잘 몰랐다, 어렸다.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오랜 친구를 잃었고, 젊고 찬란해야 할 날들에 나는 나의 세상은 상처로 젖어 암흑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어느 인연과의 이별의 순간보다 더 선명하고, 눈물 젖은 채로 안개 낀 채로 그 순간이 다가온다.  


  소울 메이트라 부를 만한 친구였다. 여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것은 내가 한 실수가 나의 죄로 다가올까 두려워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맞았다. 내가 한 이유 없는 단죄는 사과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기엔 내가 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모습 그 자체로 사랑받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더 밀어내고, 더 숨고, 더 밀쳐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나로서는 나도 사랑받고 싶었음에 미웠다. 친구인데, 친구라면서, 오래 묵은 정과 사랑만큼이나 배신감이 컸다. 


내가 알아왔던, 사랑했던, 함께 했던 친구가 아니었다.  

  삶은 늘 내게 녹록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따뜻했던 순간들에 함께 했던 나의 친구가 과거로만 기억으로만 남았다는 것은 삶이 정말로 더 많이 회색임을 알게 해 주었다. 다채롭고 싶었는데, 행복하고 싶었는데, 행복한 순간들에 친구가 없어 이미 행복은 덜 행복했다. 


  나의 친구들은 알고 있을까. 이런 나의 마음에 슬퍼하진 않을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삶에 닥친 작은 불행이 나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이미 오래전부터 함께한 슬픔이 다시 한번 찾아온 것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줄곧 심고 싶었다. 사과나무. 미안한 이들이 너무 많다. 나의 벗과 나의 또 다른 벗과 어린 나와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 불행보다 힘든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 불행이 조금 더 크기에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다. 고난인 삶에서 나를 받쳐주던 많은 이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것이 나를 위한 위안과 연민일지라도.  


  다들 그럴까. 오늘처럼 삶이 고난으로 다가오는 날. 친구가 보고 싶을까. 할 말을 잃고, 주구장창 슬픈 말을 늘어놓고, 술도 약도 먹지도 듣지도 않을 때, 서로가 보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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