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야기 3

형님은 언니가 되었다.

by 김소영

‘내가 할게, 설거지’

‘아녜요, 무슨, 저 이미 장갑 꼈어요!’


시댁 가면 벌어지는 설거지 실랑이는 여느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이 어려운 사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혼자 계신 아버님이 편찮으신 이후 형님들과 우리 가정은 편할 날이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누군가는 아버님을 모셔야 하거나, 혹은 돌아가면서 순번으로 아버님을 돌봐야 하는 상황. 나는 이 모든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로만 느껴졌다. 아버님을 모셔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과 ‘아픈 내가 왜?’ 하는 반발사이를 오가며, 하루에도 여러 번 감정의 널을 뛰었다.


그러나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형님들은 늘 고군분투했다. 한 주에도 여러 번 자가로 기차로 먼 거리를 오갔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아빠를 사랑했다. 지극히 평범한 나는 효심 가득한 세 남매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고, 내가 생각하는 희생하는 사랑의 마지노선도 한참을 넘어선 후였다.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다는 게 어리석은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에 콧방귀로 뀌듯이 세 남매는 십 년 가까이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까지 아프기 시작한 이후, 그 흔한 설거지 한 번 내게 시키지 못하고, 서로 하겠다고 싸우고 계셨다.


미워하는 마음은 오래전 사라졌다. 그저 본인의 몸은 돌보지도 못하고, 아버님만 생각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내게 그런 마음은 없었다. 내 몸 아픈 것을 참으며,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상처받은 K 장녀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아빠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데, 나는 아버님을 모실 수도, 나의 희생이 거름이 되어야 하는 상상 따위 할 수도 없는데, 나를 포함한 동시대를 사는 친구들이 갑자기 전부 가여워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언니처럼 느껴졌다. 가여운 나의 언니가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치과 비를 아껴서 아버님치과 보내 드리고, 투 잡에 쓰리 잡까지 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뭇거림 없이 자신을 갈아 넣는 일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보다 누군가를 더 많이 사랑하면, 결국 나처럼 될 텐데… 하고 악담 같은 말을 혼자 되뇌었다. 가난은 왜 늘 병과 친구를 먹고, 싸우려고 하던, 잘 지내보려고 하든 간에 우릴 못살게 구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함께 싸워주던 젊음과 열정 따위는 도망간 지 오래인데, 왜 우리는 여전히 당하고만 있는 걸까 하고 서글퍼졌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시기라도 한 걸까, 형님은 병원에 다니신다고 했다. 이것저것 치료도 받고, 본인이 아빠 일에 감정 조절이 안 된다며, 갈아 넣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주 짧은 푸념을 하셨다. 나는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에 안도했다.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를 보던 어른의 시선으로 조금은 내 또래언니 같은 그 말들이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혼자 억울한 마음은 아닌 거 같아 위로가 되기까지 했다.


몇 번의 (속으로 한) 연습 끝에 언니라고 한 번 불러봤다. 우린 서로 적잖게 어색하고, 멋쩍었지만 싫지 않았다. 10년 만에 가족이 된 느낌이랄까.


서로 하겠다는 설거지는 결국 남편에게 돌아갔지만, 형님은 언니가 되었다.

가족의 축이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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